우리 측은 예년 수준(20만∼30만 t)의 대북 비료 지원이라는 ‘선물’을 내세워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현저한 인식차로 인해 높은 대화의 벽을 절감해야 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북측은 남측이 제기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 준수 및 6자회담 복귀 제안을 외면했다. 또 15차 장관급회담 개최와 1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를 합의문에 넣는 데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남측의 핵문제 거론에 대해 북측 회담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핵문제와 거리가 있는 회담”이라며 “회담에서 핵문제가 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회담이 차관급회담이 아니라 ‘당국 간 실무회담’이라고 주장했던 북측은 핵문제는 미국과 논의할 일이지 남한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부 차관은 “남측의 ‘중요한 제안’은 말 그대로 제안일 뿐 뭘 주겠다는 약속이 아닌 만큼 북측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예년 수준을 넘는 비료를 가급적 빨리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해 비료 확보가 사실상 유일한 관심사임을 드러냈다.
▽회담의 목표 축소 조정?=정부는 회담 출발 직전 밝혔던 △남북관계 정상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3대 협상목표 중 장관급회담의 날짜 확정이라는 ‘현실적인’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남측회담 대표는 이날 오후 8시가 지나도록 회의가 재개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날짜를 정하는 것이 정부의 1차 목표”라고 밝혔다. 서울의 한 고위 당국자도 “남북관계의 포괄적 논의 틀인 장관급회담 개최 날짜를 잡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예년 수준을 넘어서는 북한의 비료 추가 요구량에 대해서는 장관급회담에서 추후에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비료 지원과 장관급 회담 재개를 사실상 연계했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柳浩烈) 교수는 “정부가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일종의 고육책”이라며 “북한 및 국제사회에 대한 일종의 선언적 성격일 뿐 북측이 실제로 호응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동영 장관 남북대화 무대에 본격 등장하나=정부는 이번 회담의 기본목표를 단절된 남북관계의 복원으로 삼고 장관급회담의 재개에 힘을 쏟았다.
장관급회담이 열리게 되면 그동안 남북대화 중단으로 별다른 역할을 못했던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남북대화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정부는 다음 달 평양에서 남북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는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전에 15차 장관급회담을 서울에서 열 것을 북측에 촉구했다. 또 6·15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에 장관급을 대표로 하는 남측 대표단 파견을 제안했다.
이 제안이 현실화될 경우 정 장관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관계 복원을 주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 장관은 6·15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에 참석차 방북할 경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면담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정 장관은 지난해 12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찾은 바 있다.
남북 양측 제안 내용과 협의 진행 상황 | ||
남측 제안 및 요구 | 협의 진행 상황 | 북측 제안 및 요구 |
평양 6·15남북공동행사에정부 대표단 참가 | 남측 대표단 참가 합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 참가 여부협의 중 | 평양 6·15남북공동행사에남측 정부 대표단 파견 |
인도주의적 차원의 비료 지원 용의 | 남측 예년 수준 지원 방침. 규모와 시기 협의 중 | 비료 50만 t과 식량 지원 |
남북장관급회담 6월 중 개최 | 협의 중 | 없거나 확인 안됨 |
8·15이산가족 상봉 | 협의 중 | 없거나 확인 안됨 |
남북간 철도·도로연결 개통식 | 협의 중 | 없거나 확인 안됨 |
북핵 불용 입장 통보북한의 6자회담 복귀 촉구 | 상대에 대한 요구로 협의 대상은 아님 | 김일성 주석 조문 불허에 대한사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충무계획, 국가보안법 폐지 |
개성=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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