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희]행정구역 개편논의 유보하자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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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생활에 직결될 뿐만 아니라 정치 행정 경제 사회활동의 기반이 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신중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여야의 개편방안을 살펴보면 현재 9개인 도를 폐지하여 자치계층을 단일 계층으로 하되, 열린우리당은 현재의 시군을 1특별시 60개 광역시로 하자는 것이고, 한나라당은 70개 미만의 대도시권으로 통합 개편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행정구역 개편을 위한 기본방향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발상 자체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지금은 자치계층 개편보다는 분권에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지방분권에 관한 40여 개의 로드맵 과제를 기존의 시도와 시군구의 2계층 틀 하에서 심도 있게 검토하여 제도화를 꾀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자치계층이 1계층으로 바뀐다면 사무의 이양, 경찰 자치, 교육 자치, 재정 분권 등 많은 사안들이 새 계층이 획정될 때까지 분권화 작업이 중단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방분권에 힘 쏟을때▼

여야 할 것 없이 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교통 통신이 발달하여 과거와는 다른 행정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도를 단순히 중앙정부의 지시를 시군에 중계하고, 감독 통제하는 기관으로만 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광역자치단체인 도는 시군 간에 걸치는 광역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전국에 설치된 6000개가 넘는 중앙정부의 특별지방행정기관(지방사무소)이 처리하는 일의 상당부분을 도에 이양하여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각 도가 광역기능을 전담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편 도를 폐지하면서 3, 4개의 시군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방안은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발상이다. 누가 대도시는 인구 100만 명, 도농지역은 70만 명, 농촌지역은 30만 명 수준이 적정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어떤 근거로 3, 4개의 시군을 합치는 것이 적정한 면적규모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듯 행정구역을 통합한 자치단체가 행정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지역주민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자치단체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상태다. 논리적 검증도 없이 직관적이고 획일적인 도면작업 만으로 자치단체를 이리저리 붙여 인구규모를 기준에 꿰맞추고, 지도에 선을 그어 자치단체를 통합 개편하려는 발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시군 통합은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도의 폐지도 당연히 주민투표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 주민들이 폐지를 반대하는 도나, 통합을 반대하는 시군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는 자치행정이 매우 번잡하게 되고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道폐지는 득보다 실 많아▼

도를 없애고 시군을 통합하면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행정구역의 개편을 통해서 지역구도가 타파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보다는 정치인들이 선거를 지역구도로 몰고 가지 않고, 국민들이 지역감정을 배척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는 어렵고 복잡한 자치계층과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치 2계층 틀 안에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분권과제를 우선 처리하고, 도는 일부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업무를 이양하게 하여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루빨리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주희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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