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독일식 흡수통일 반대 로드맵 천명

  • 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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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이날로 독일 방문 일정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터키로 떠났다. 프랑크푸르트=석동률 기자
독일을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이날로 독일 방문 일정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터키로 떠났다. 프랑크푸르트=석동률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동포간담회에서 ‘독일식 흡수통일’에 반대하면서 구체적인 통일 경로를 제시한 것은 대북(對北) 메시지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날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통일은 잘 준비해서 천천히 해야 한다”며 ‘평화구조 정착→교류협력 통한 관계 발전→통일 감당할 북한의 역량 성숙→국가연합→통일’이라는 ‘통일 로드맵’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제시한 통일 경로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89년 노태우(盧泰愚) 정부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내놓은 이후 역대 정부가 유지해온 ‘선(先) 평화정착, 후(後) 통일’의 기조를 이어받은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노 대통령은 국가연합 이후의 과정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국가연합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제시한 통일 경로를 ‘4단계 통일론’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으나,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연합에 이르는 경로는 현실적으로 병행해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노 대통령도 이를 각각의 단계로까지 구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의 발언 중 주목할 대목은 통일 경로보다는 “설령 북한에 어떤 사태가 있더라도 북한 내부에서 상황을 통제해 갈 만한 내부 조직적 역량이 있다”고 평가한 부분이다. 이는 북한을 향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체제의 지도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이고,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체제 안전 보장 약속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5일 폴란드 바르샤바 동포간담회에서도 “중국은 물론 한국도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체제 붕괴 때는 대규모의 탈북자가 중국 국경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중국도 원치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조장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은 물론 북한 정권이 스스로 체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까지 거론했다. ‘안심하고 6자회담 테이블에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다시 보낸 셈이다.

노 대통령이 통일 경로 중에서 ‘평화구조 정착→교류 협력 통한 관계 발전’을 앞세운 것도 북핵 문제 해결을 전제로 포괄적인 대규모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독일 일간지 ‘디 벨트’와의 14일자 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을 계속 위협이라고 느낀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도 “위협의 정도는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북한은 현대적 신무기는 물론 전쟁을 수행할 경제력도 없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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