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조지 W 부시 對 김정일

  • 입력 2005년 2월 1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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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63회 생일을 맞았다. 북한 전역이 잔치판이었다. 2200만 주민은 주민대로, 권력층은 권력층대로 기를 쓰고 1인 지배자에 대한 충성 경쟁을 벌였다. 북한 곳곳에서 며칠 동안 춤판이 벌어지고 노랫소리가 요란했다.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세계 최대 규모의 생일잔치였다.

북한은 과연 호화판 파티를 할 만한 형편인가. 김 위원장은 ‘역사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희세의 위인, 절세의 애국자,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한 지도자인가.

북한의 거국적 축하행사 위로 악질 수령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암행어사 이몽룡이 거지꼴로 나타나는 춘향전 장면이 겹쳐진다. 어사는 수모를 당하며 음식을 얻어먹은 뒤 수령의 폭정과 백성의 고초를 대비시킨 시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촉루락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금동이의 아름답게 빚은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

▼암행어사 출두요!▼

수십만 명의 주민을 굶어 죽게 하고 지금도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아 간신히 기근을 면하는 나라. 살길을 찾아 외국으로 탈출하는 주민의 행렬이 이어지는 나라. 춘향전의 남원은 오늘의 북한이다. 변학도는 오늘날 북한 지도자와 닮은꼴이다. 이몽룡이 북한 땅에서 김 위원장의 생일을 맞았다면 주저 없이 붓을 휘둘렀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생일잔치에 북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의 일상사를 주민의 행복이나 국가의 안위 위에 두는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이 휘두르는 ‘핵 카드’도 김 위원장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북한 체제를 생각하면 쉽게 읽을 수 있다. 북한 관영언론은 일제히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거부를 선언한 김 위원장의 ‘배짱’과 ‘지략’을 찬양하고 있다. 북한에 핵 카드는 내부 결속과 김 위원장 체제 유지를 위한 양날의 칼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김 위원장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맞서는 상황에서 변화는 곧 패배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희망을 갖기 어렵다.

부시 대통령은 재선 취임연설과 새해 국정연설에서 ‘자유 확산’과 ‘폭정 종식’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지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가치지만 김 위원장에게는 “자리를 내놓으라”는 직격탄이나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이 부자 세습을 거치며 장기간에 걸쳐 통치관(統治觀)을 굳혔듯 부시 대통령의 자유관(自由觀)도 뿌리가 깊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 곳곳에서 그가 믿는 기독교의 신을 거론했다. 대통령이 공개 연설에서 ‘인류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의 형상을 닮았다’는 신앙고백을 하기는 쉽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C-SPAN 방송과의 회견에서는 “자유에 대한 신념이 어린 시절 부모에 의해 가슴에 새겨졌다”는 말도 했다.

▼독재와 신앙의 대결▼

장기독재도 포기하기 어렵지만 종교적 차원으로 굳어진 신념도 버리기 힘들다. 부시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결투로 간단하게 승부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투가 흔하던 중세도 아니고 장수들의 대결로 승패를 가리던 삼국지 시대도 아니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한반도의 장래가 고집불통인 두 사람의 대결에 좌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허황되지만 북한에서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는 극적인 순간이 오기를 상상해본다. 부시 대통령은 적어도 백성을 굶주리게 하지는 않으니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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