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공개 문서’에서 찾아야할 역사의 교훈

  • 입력 2005년 1월 21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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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피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귀중한 자금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1965년 당시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발행한 ‘한일회담백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백서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을 ‘추호도 거리낌 없이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며 몇 가지 사용 원칙을 공개했다.

그 첫 번째는 ‘자금의 혜택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 지역에도 편중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40년이 지난 17일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자 정부가 대일 협상 과정에서 개인청구권을 무시했다는 비판과 논란이 불거졌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18일 국무회의에서 “과거 정부가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40년 만에 또다시 여러 피해자의 분노가 솟구치는 상황이 왔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의 잘못을 현 정부가 바로잡겠다는 함의를 담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외교통상부의 한 당국자는 “당시 청구권 자금 문제의 정치적 타결은 불가피했던 것 같다. ‘온 국민이 일제의 피해자’란 인식 아래 그 자금을 대규모 국책사업에 사용한 정책적 판단도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엔 ‘박정희 정부도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20일 공개된 ‘1974년 박정희 저격 사건 관련 외교 사료’를 보는 정치권과 관가의 시각도 다를 게 없다. 여야는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를 둘러싸고 ‘박정희의 딸’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한 고위 외교관은 21일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 선배들이 참 열심히 했구나’ 하는 느낌뿐”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는 부도덕한 정권’이란 정치적 재단이나 ‘당시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인식에는 낡은 외교 사료 속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으려는 노력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외교문서 공개의 진정한 의미는 30, 40년 전 역사의 매도나 외면이 아니라 객관적 평가와 분석을 통해 30, 40년 후 역사의 평가에 대비하는 것이 아닐까.

부형권 정치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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