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만호]‘北인권’ 한국은 외면하나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14분


북한인권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해 실질적으로 확정되자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국회에서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각 나라가 처한 특수상황을 고려하여 다양한 접근방식을 검토·선택해야 하고 △남북한간에 긴장 완화와 화해 협력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점진적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북한 스스로가 인권상황을 개선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3대 기본 입장을 밝혔다. 곧이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인권법안에 서명하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인권문제가 남북한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공산국가의 인권문제는 압박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종속변수 취급 곤란▼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여기에는 자가당착(自家撞着)과 한계가 내포되어 있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하면서 남북한 관계의 종속변수로 설정하는 게 자가당착이다. 평화번영정책의 결과로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그 결과로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도록 하자는 것은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북한 일반 주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계급차별정책으로 유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북한 스스로 인권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는 것은 북한 인권 문제의 근본 원인과 속성을 간과하고, 한국 정부 스스로 자기주장의 한계를 긋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북한을 도와도 북한의 정치체제가 ‘사유화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남아 있는 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결코 해체되지 않을 것이다.

공산국가의 인권문제가 압박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과거 동구 공산체제 아래에서 인권운동이 일어나고, 인권 신장이 가능했던 것은 1975년 헬싱키 협정에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을 가입시켜 협정의 인권조항 준수를 서방국가들이 계속 요구하고, 내부의 저항세력들이 이를 인권운동의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정치범 수용소인 노동개조장이 폐쇄된 것도 도이모이 정책을 펴는 데 필요한 지원을 줄 수 있는 서방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계속 소극적으로 나가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대북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은 북한과 수교교섭을 하면서부터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고 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에도 북한인권 개선 촉구 결의를 지난 2년간 연속 상정해 채택되게 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은 유럽안보협력회의(OSCE)와 같은 다자간협의체를 통해 여러 일반 현안들과 함께 북한의 인권문제를 논의하고 인권개선 노력에 대해서도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지표와 척도를 만들어 당사국의 대외선언과 실제상황을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법안에서 미국은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양자간 혹은 직접적 지원은 지양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국제사회 개선노력 동참해야▼

그런데 남북한 관계의 특수상황만 강조하며 이런 국제적 노력과 주문을 거부한다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고립된 한국 정부가 ‘인류보편의 가치’까지 유보·희생해 가며 남북한 관계의 가시적 성과에만 매달린다면 추구하는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설령 한국의 지원으로 북한의 현 체제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고 경제상황이 개선되더라도, 그것이 북한의 인권신장으로 연결되고 북한사회 내에 인권운동의 공간이 확보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외부의 관찰과 개입이 필요하다.

달라이 라마의 언명처럼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해 말해줘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진보적임을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대북정책에서 최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인류역사의 진보가 인권신장에 있기 때문이다.

허만호 경북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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