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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24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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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스쿨은 미국에서 미국의 법 현실에 맞게 발전해온 제도다. 따라서 이를 직수입해 그대로 적용할 경우 우리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일본도 일본의 독특한 법체계와 현실을 반영해 ‘일본형 로스쿨’을 개발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 맞는 로스쿨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적 로스쿨 필요=미국식 로스쿨은 문답과 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미국식 교육문화의 특성이 잘 반영된 제도다. ‘주입’과 ‘암기’ 위주로 이뤄지는 한국식 교육과는 다르다.
법질서와 사회제도는 특히 그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토대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다. 미국에서도 로스쿨 정착에 40∼50년이 걸렸다. 따라서 한국의 현실에 맞는 ‘한국형 로스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먼저 법학 교육의 주체와 관련해서는 학부의 법학과를 개혁해서 로스쿨과 함께 유지하자는 주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로스쿨 기본과정을 3년으로 하되,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학생에게는 로스쿨을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이는 법학부를 폐지하거나 무작정 방치할 경우 예상되는 혼란과 반발을 고려한 것이다.
로스쿨 인가에 있어서도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로스쿨 모습을 갖춘 미국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인가를 쉬 내줄 경우 서울에 로스쿨이 집중될 것이 뻔한 데다 시설이나 교수진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로스쿨이 속출해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변호사자격시험 합격 대상보다 로스쿨 정원이 2배 이상 인가돼 ‘로스쿨 낭인(浪人)’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로스쿨 인가 규모는 법조인 선발 인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조계와 학계 등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로스쿨 개설 및 요건 구비 확인과정에 자신들이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로스쿨 운영 방식이나 변호사시험 합격 이후 법조인 실무교육 등의 문제도 사회적 기반이나 경험이 거의 없는 만큼 신중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논리에 맡겨야=이 같은 한국형 로스쿨도 과도기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많다. 로스쿨 도입은 법조인 선발이나 경쟁시험이 아닌 자격 부여로의 전환을 뜻하기 때문에 결국은 로스쿨 이수자 대부분에게 변호사 자격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급증으로 인한 법률시장의 과당 경쟁과 법률서비스의 질 저하 문제도 시장의 논리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로스쿨 낭인’ 문제도 시장의 논리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조인이 누려온 사회적 특권이 사라지고 적자생존의 논리가 관철되면 우수 인력이 무턱대고 로스쿨과 법률시장에만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단국대 법대 문재완(文在完) 교수는 “로스쿨은 창조적인 법률가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춘 제도여서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누구든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한국형 로스쿨을 만들지, 이를 얼마나 운영할지 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다양하고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로스쿨 도입 문제 논의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누가 어느 수준으로 가르쳐야 하나?▼
로스쿨의 운영을 누가 맡느냐 하는 것과 로스쿨의 교육 수준이 로스쿨 도입 과정에서 또 다른 중요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로스쿨의 실효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로스쿨 정착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로스쿨 운영 주체에 대한 논란은 효율성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의한 자유경쟁 방식. 로스쿨 운영도 일정 조건을 충족한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맡는다. 학생 선발 방식과 교육 과정 등을 대학마다 정하기 때문에 독창성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로스쿨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면 바로 도태될 위험도 있다.
그래서 로스쿨은 우수학생 유치 및 질 높은 교육을 위해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하고, 로스쿨 이수자는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미국 사립대 로스쿨의 연간 학비는 통상 3만달러(약 3400만원) 수준. 기숙사비와 책값, 용돈까지 합치면 연간 6만달러(약 6800만원)에 이른다. 최근의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로스쿨 졸업생의 80%가 10만달러의 은행 빚을 지고 학교 문을 나선다고 한다.
은행빚을 쓴다고 해도 저소득층에는 ‘진입장벽’인 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로스쿨을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로스쿨 시설이나 교수진 등을 지원하고, 교육은 교수 등이 포함된 독립적인 운영위원회에서 맡게 한다는 것. 이른바 ‘국립 로스쿨’ 방식이다. 법무부와 학계 일부에서 이를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로스쿨 학비가 저렴해진다.
하지만 국립 로스쿨 도입은 국가가 로스쿨의 규모, 즉 법조인의 수를 결정하는 것이어서 현행 제도와 별 차이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한시적으로 국립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로스쿨의 교육 수준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로스쿨은 궁극적으로 대학의 법학교육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한다는 것인데, 그 내용이 법대 교육과 큰 차이가 없다면 제도변경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등 업계에서는 로스쿨 교수진의 70%를 실무가로 채워야 한다고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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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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