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보법 폐지? 한숨만 나오네요”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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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국가보안법 관련 기획자문위원회의가 끝난 뒤 열린우리당 A의원이 B의원에게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국민이 원하는 게 그 방향이 아닌데….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해 가고 있어요. 이제 물러설 데도 없는데….”(A의원), “그러게 말입니다. 해법이 없으니 답답하지요.”(B의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요즘 국가보안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한숨부터 내쉰다. 일이 꼬일 대로 꼬여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꼬였나=발단은 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이었다.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그동안 실용적·법리적 차원에서 진행돼 온 국보법 개폐 논의가 이념대결 양상으로 성격이 급변했다. 당내 논의는 사라졌고,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국보법 폐지 반대에 대표직을 걸겠다며 ‘옥쇄(玉碎)’의 각오까지 천명했다. 보수단체들은 일제히 궐기했고 이번 주말 대규모 장외집회를 준비 중이다. 국보법 개폐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어 충분히 여야간 대화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법안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국보법 폐지 여부’가 쟁점이 돼버렸다.

여권 내 사전 논의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적어도 국보법과 유관한 법무부, 검찰, 국가정보원, 경찰 등의 의견을 듣고 이를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사법부의 견해도 점검했어야 했지만 정치권, 특히 당내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어떻게 푸나=13일 종교계의 두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과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의 국보법 폐지 반대 발언은 당내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당 지도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 홍보전에 비상이 걸렸다. 상대가 한나라당과 보수층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날 기획자문위원회의에서는 경제 종교 문화 교육 분야에 있는 개혁성향의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또 한나라당을 고립시키기 위해 민주노동당 민주당과의 연대도 강화키로 했다.

이와 함께 이념대결을 법리논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가급적 이른 시일 내 형법 보완이냐 대체입법이냐를 매듭짓기로 했다. 한나라당과의 TV토론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당내에서는 형법 보완보다는 여론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대체입법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 이부영(李富榮) 의장도 법안 성안(成案)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국보법 처리일정은 정기국회 후반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을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국보법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정치력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 같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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