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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17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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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에 따르면 ‘의성 김씨’ 대종회측은 “며칠 전 김 의원의 보좌관이 찾아와 가계도를 그려가며 김 의원 일가가 ‘의성 김씨’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었다”면서 “하지만 김 의원측이 파(派)를 알지 못해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종회측은 또 “16대 총선 때도 김 의원이 ‘의성 김씨’라고 주장해 우리가 김 의원에게 믿을 만한 자료를 요청했으나 ‘정리가 안돼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공개했다.
월간조선은 1969년 결혼한 김 의원이 1970년 자신의 호적에 ‘의성 김씨’로 등재했었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은 또 김 의원이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자부할 수 있는 사실적(史實的) 근거는 작은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김학규(金學奎) 장군뿐인데 김 의원이 ‘안동 김씨’라고 주장한 김 장군도 ‘안동 김씨’ 족보에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안동 김씨 종친회측은 “김 장군이 안두희를 김구 선생에게 소개한 분이라는 얘기가 있어 족보 전체를 꼼꼼히 살펴봤지만 김 장군의 이름을 족보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은 이어 김 장군은 김구 선생의 남북 협상 노선에 반대했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신경군관학교 2기 출신으로 러허(熱河)성에 있는 만주군 보병 8단 부관(중위)으로 근무하던 박 전 대통령은 광복 직후 베이징으로 가서 광복군 3지대 ‘평진대대’에 합류했으며 그 때 제3지대장이 김 장군이었다는 것.
김 장군은 귀국한 뒤 한독당 조직부장에 취임했다. 이후 그는 김구 선생을 저격한 안두희의 한독당 입당을 주선했으며 김구 선생 저격사건 이후 안두희를 배후 조정한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고 월간조선은 밝혔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옛 상사였던 김 장군을 보살폈고 김 장군을 복권시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토록 했다고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측은 “아직 자료를 읽어보지 못해 언급할 상황이 아니다”며 “자료를 검토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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