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圈 시스템 따로따로]<上>黨-靑분리 딜레마

  • 입력 2004년 8월 2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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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항로를 그렸다. 이제는 항해를 할 때다.”

열린우리당이 4·15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획득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탄핵에서 업무에 복귀한 후인 5월 말 당시 대통령정치특보였던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원은 참여 정부 국정 2기의 성격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 뒤 2개월여가 지났다. 그러나 ‘노무현호’는 여전히 국정 운영의 방향타를 잡지 못한 채 내풍(內風)과 외풍(外風)에 휘둘리며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손발 안 맞는 여권=당(黨)-정(政)-청(靑)의 관계는 총선 후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접점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각종 현안에 대해 당, 혹은 소속 의원들이 청와대 및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이내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라크 추가 파병을 놓고 상당수 여당 의원이 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논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기소권 부여 논란 등이 단적인 예다.

그나마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문제는 당정협의를 거쳐 25.7평 이하 아파트에 대해 단계적 실시 방향으로 가까스로 절충점을 찾았으나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존속 문제를 놓고 또다시 여권은 파열음을 냈다.

청와대는 남파간첩에 대한 민주화 인사 인정 파문 이전부터 의문사위의 존속에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으나 당은 거꾸로 의문사위의 권한과 조사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

청와대는 결국 이런 움직임에 부담을 느끼고 뒤늦게 당-정-청 정책협의회를 통해 “의문사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럽다. 소속을 국회로 하자”고 입장을 정리했다는 후문이다.

▽당-청 분리의 양면=신기남(辛基南) 의장은 “과거처럼 당-청 일체 시스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청와대의 젖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니다”며 당-청의 건설적 분리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당-정-청 고위정책협의회로 상징되는 이른바 ‘당-정-청 3각편대’를 통해 시스템 아래 움직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몇몇 사안에 대해 다시 당-정-청의 간극을 확인해 주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가 내년 7월 폐지를 기정사실화한 중소기업의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를 당 쪽에서 1, 2년간 유예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

정부가 이에 강력 반발하고 나서자 열린우리당은 목소리를 다시 낮추어 정책 수요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대야(對野) 전략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상생(相生)의 정치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개인사를 공격하는 등 ‘역할분담’인지 ‘전략부재’인지 아리송한 대응이 지속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 의장이 박 대표와 대통령의 영수회담 주선을 제의했지만 실은 청와대는 별로 달가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신 의장이 ‘진실과 화해, 미래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가 2일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당과 원내 어디에 구성할 지를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추후 논의키로 유보한 것도 여권 내 충분한 사전 조율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뭐가 문제인가=열린우리당측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취임 후 당-정-청 협의회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에게 고언(苦言)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정국 운영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지만 노 대통령이 귀 기울여 듣는 스타일이 아니지 않느냐. 누가 최고권력자와 척지고 싶어 하겠느냐”고 실토했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도 “당-청간에 보다 활발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특히 대야 관계에 있어서 일목요연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적어도 2년 동안은 야당의 협조를 얻어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노 대통령도, 우리 당도, 한나라당도 산다. 8·15광복절을 기점으로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토론과 설득을 통한 합의 도출과 중구난방식의 난맥상은 다른 것이다”며 “대통령 자신이 눈길은 진보 쪽에 둔 채 아무리 실용주의를 말해 봐야 생산적 효과가 나타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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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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