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지도부-소장파 ‘수도이전 개정안’ 의총서 격돌

  • 입력 2004년 7월 13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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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여권의 수도 이전 강행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으나 당론도 정하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서영수기자
한나라당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여권의 수도 이전 강행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으나 당론도 정하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서영수기자
한나라당이 수도 이전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13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김정훈(金正薰) 의원 등 당 소장파 의원들이 ‘신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조만간 내겠다고 나서 이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당 지도부와 충돌했다.

먼저 당 지도부가 선수를 쳤다. 김덕룡(金德龍) 대표권한대행은 의총 인사말에서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어정쩡하다’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 있는데 수도 이전 문제는 찬성 반대를 다투는 문제가 돼서는 안 된다”며 “근본적으로 잘못된 수도 이전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안 제출이 ‘전략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우리의 방식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반대여론이 늘어나 과반수에 달했다”며 “우리는 (수도 이전 대응에 대해) 옳은 길을 걸어왔다”고 그동안 ‘우보(牛步) 전술’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은 이제까지 (수도 이전 문제를) 잘 관리했다.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포지션을 정해 놓고 우리 전략대로 가고 있다”며 “움직이는 것(찬반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잘되는 게 아니다. 머리만 잘 움직이고 있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정훈 의원은 “한나라당은 지금 (현안 발생 때마다 반응이나 보이는) ‘대응 당’의 모습밖에 없다.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어정쩡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시민단체가 나서 헌법소원을 내는데도 당은 아무런 대처도 안 하고 당론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당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며 개정안을 제출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개정안 제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에 김 권한대행은 “소수당인 한나라당이 속전속결로 표결해서 패배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이 문제는 신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유보하면서 일단 의총을 마무리 지었다.

당 지도부의 이날 발언에 대해 당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가 수도 이전 문제를 정략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시인했다. 공당의 지도부로서 발언이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중진 의원은 “김 권한대행의 ‘전략적 대응’ 발언이나 이 정책위의장의 ‘전략대로 가고 있다’는 언급은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아무리 정당으로서 전략과 전술이 중요하더라도 공당의 지도부가 수도 이전이라는 중대사에 대해 노골적으로 전략 운운한 것은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洪準杓) 의원도 “원내 제1야당이 여론에 숨어 당 정책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며 “특히 당 지도부가 이를 마치 잘한 일인 양 내세우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당은 여론을 주도해야지 여론에 숨어 반사이익만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정훈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 121명 전원을 상대로 특별조치법 개정안 제출에 대한 설문을 하고 있다”며 “설문 결과 다수가 개정안에 찬성한다면 바로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이날 비공개 의총에서 “지금 당 내엔 김덕룡계니 민주계니 경복고 동문이니 하는 ‘이너 서클’이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얘기가 나도는 것 자체가 당으로서는 불행한 일”이라며 김 권한대행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이회창(李會昌) 총재 때만 해도 의원들이 같이 간다는 동지의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의식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 권한대행은 이에 “지금 당 내에 무슨 이너 서클이 있느냐”며 진화에 부심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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