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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7월 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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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은 정책의 문제다. 정책에는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도 찬반으로 갈려 있다. 그러나 ‘청와대 브리핑’은 이를 정책의 문제가 아닌 선악(善惡)의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과거 상황과의 단순 비교는 무리=박정희(朴正熙) 시대의 수도 이전과 지금의 수도 이전은 맥락이 다르다. 당시엔 냉전 상황에서 안보 측면이 크게 중시됐다. 청와대가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려면 당시 수도 이전 문제를 보도했던 다른 신문과 방송의 보도 내용도 공개해야 한다.
‘왜 92년 민자당 김영삼(金泳三) 후보, 97년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검증하지 않느냐’는 청와대측의 지적도 논리적 결함이 따른다. 당시는 두 사람 모두 후보 시절이었다. 후보의 공약은 당선 가능성과 향후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현직 대통령의 정책과는 무게가 다르다. 2002년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급부상한 것은 한나라당측이 이 문제를 대선 이슈로 쟁점화했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 시인한 천도(遷都)론=‘왜 지금 수도 이전 문제를 이슈화시켰느냐’는 청와대의 비판도 반론의 여지가 많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신행정수도에 이전할 국가기관에 청와대 중앙행정기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도 대상이 된다고 지난달 8일 밝혔다. 김안제(金安濟) 신행정수도이전추진위원장은 다음 날 한나라당의 한 의원모임에 참석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한 법에 따르면 신행정수도 이전이 맞지만 입법부와 사법부가 다 옮기면 천도가 맞다”며 천도론을 시인했다. 또 “나도 예전엔 사업 추진에 힘을 받기 위해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국민투표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국회 통과 이전에 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수도 이전 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언론의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은 이처럼 정부 스스로 행정수도 이전이 아닌 천도의 개념으로 입장을 바꾼 데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본보와 조선일보뿐 아니라 다른 신문과 방송들도 일제히 비판적 보도를 했다.
▽본보의 자성과 가치중립적 보도=청와대의 지적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본보는 ‘기자의 눈’(6월 22일자 A6면)을 통해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이 정략적인 목적으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킬 당시 언론이 이를 감시 비판하지 못한 점을 자성했다.
본보는 이에 앞서 6월 14일자 A4면엔 한나라당이 수도 이전에 대해 오락가락했던 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또 7월 8일자 A6면 ‘기자의 눈’은 한나라당이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본보는 또 청와대가 문제 삼은 6월 1일부터 7월 8일까지 수도 이전과 관련해 12건의 사설을 게재했지만 논조는 ‘수도 이전을 반대한다’가 아니라 ‘철저히 검증하자, 재론하자’였다.
중앙일보의 경우 6월 3일자에서 ‘행정수도 이전 밀어붙이기 안 된다’를 비롯해 이달 6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비판적 사설을 게재했으며, 한국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도 수도 이전 결정은 국민투표를 통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잇달아 실었다. 문화일보는 6월 9일자 사설에서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청와대 브리핑’은 수도 이전 논란의 역사적 맥락과 사실을 무시하고 흑백논리로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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