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자유투표와 섞여 앉기

  • 입력 2004년 6월 8일 18시 38분


17대 국회 들어 자유투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표결 때 의원 개인의 판단을 존중해야 정쟁(政爭)도 줄고 토론과 합의라는 의회주의의 정신도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의 초선 의원들이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고, 각 당 지도부도 “의원 판단에 맡기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긍정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국회법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114조의 2)고 규정하고 있다. 여야는 자유투표를 활성화하자며 2002년 3월 이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있으나마나한 선언적 조항에 불과했다.

국회의원은 국민과 정당을 대표하지만 당연히 국민 대표가 우선이다. 그런데도 정당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더 비중을 둬 온 것이 사실이다. 당론이 정해지면 자신의 신념과 괴리가 있다 해도 따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됐지만 3월 국회를 통과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그랬다. 야당 지도부는 ‘공천 철회’까지 들먹이며 의원들을 압박했다. 그처럼 모든 사안에 대해 당론투표를 하도록 한다면 국회의원은 거수기에 불과하다. 의원 수도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다. 당론은 하나인데 여론 수렴이 무엇에 필요한가.

자유투표가 많아지려면 국가의 존립이나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민생 인사 정책 등의 사안에는 의원들이 소신껏 투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당론도 강제적 당론과 권고적 당론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당장 국무총리 임명동의안부터 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한 다음 자유투표로 가는 게 옳다고 본다.

물론 자유투표는 당의 결속력을 해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자유투표를 일방적으로 허용해선 큰 일 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당 결속력이 국익이나 공익을 뛰어 넘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여야가 좌우 양 날개처럼 앉아 있는 지금의 국회 의석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마치 동서(東西) 지역 구도를 보는 듯한 좌석배치는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것 같다. 각 당 의석 맨 뒤에 앉아 전쟁을 치르듯 의원들을 지휘하는 당 지도부의 모습도 볼썽사납다. 여야가 서로 마주보고 한 줄로 앉는 상임위도 마찬가지다. 모두 일사불란(一絲不亂)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의원들이 상임위원회별로 또는 지역구 순서에 따라 정당 구분 없이 서로 섞여 앉고, 또 자유롭게 투표를 하면 어떨까. 이것이 여야의 소통(疏通)에 기여하고 국회를 국민 곁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가 같은 사람끼리 매일같이 모여 앉아 똑같은 얘기만 주고받으면서 다른 쪽과는 아예 담을 쌓는 ‘그룹 싱킹(Group thinking)’은 정말 그만했으면 한다.

자유투표는 꼭 국회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선거에서 자유투표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예컨대 이제 주변 눈치 살피지 말고 호남 사람도 한나라당 후보에게, 영남사람도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기꺼이 표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날이 오긴 올 것인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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