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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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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절제 배인 대통령의 제1성▼
돌아온 대통령의 진심 어린 담화에 모두가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정당의 논평이 긍정적이고 TV토론 프로그램에 모여 앉은 정치인들도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다. 사과를 운운하지만 하지 않아도 괜찮은 분위기다. 상생은 이미 실천되고 있는 것인가.
대다수 국민은 정국의 빠른 정상화를 바랐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복귀와 여야 정치권의 화답을 보는 국민의 심정에 ‘연극이 끝난 후’의 허전함이 감도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정치권의 절절한 반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탄핵의 소용돌이가 단순히 국회의 권력 구도만 바꾸어준 데 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일 수도 있다. 나아가 상생의 웅변 속에서, 한 쪽은 목 놓아 통곡하고 나니 너무 많은 것을 얻었고, 다른 한 쪽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은 듯했는데 다시 제 몫을 찾았다는 ‘은밀한’ 만족을 보고 말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국민은 ‘국민을 위한’ 상생을 보고 싶고 개혁에 대한 ‘합의’를 기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탄핵사태가 대화와 타협의 부재 탓이고 그 점에서 화합의 정치가 요청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문제는 개별 정치인의 의지나 정치지도자의 리더십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 점에서 ‘화합과 상생은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고 약속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공정한 규칙의 문화가 뿌리내릴 때 가능한 것’이라는 대통령의 판단은 주목할 만하다.
지구적 수준에서 바뀌고 있는 새로운 가치와 사회 구조가 오늘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오랜 군부권위주의와 민간권위주의의 과정에서 구석구석 자리 잡은 억압과 밀실의 권위가 해체되어 가는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는 유연하고 수평적이며 투명한 사회로의 변화에 어울리는 새로운 ‘권위’의 패러다임에 합의하는 일이다. 권위는 ‘정당화된 권력’이라는 점에서 질서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정치지도자의 태도나 의지, 리더십이 개인의 특징이라면 권위는 합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상호적이고 장기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다.
상생의 정치는 단순히 선량한 심성이나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변화에 걸맞은 대통령과 국회, 정당의 ‘새로운 권위’에 합의하는 것이야말로 상생정치의 조건일 수 있다. ‘권위주의 이후의 권위 구조’에 대한 모색이 긴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와 기업, 그리고 세대간에도 새로운 권위의 모델이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대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래의 잣대로 대통령과 의회의 권위를 재서는 안 되며 시장과 시민사회를 보는 눈도 권위주의의 그것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개혁 합의 앞당기는 포용의 정치를▼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왔지만 권위주의의 두꺼운 옷을 벗는 데는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이제 업무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운 권위’의 구축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개혁에 대한 합의를 앞당기는 포용의 정치를 펼칠 것을 기대한다. 대전환의 시대에 고민과 실천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생각이 더없이 절실하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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