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기각]‘파면은 피하고 위법 의견도 수용’ 절충

  • 입력 2004년 5월 14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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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은 ‘완전한 승리도, 완벽한 패배도 없는’ 절충적 결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각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과 헌법 수호의무 위반 등을 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는 ‘탄핵 기각과 대통령 권한 복귀’라는 실리를, 탄핵소추를 추진한 야당에는 ‘체면’을 차릴 여지를 남겨준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결론은 헌재 재판관의 구성과 성향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재판관들은 추천기관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구분되며 정치적 성향과 이념도 나뉜다. 물론 헌재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규범적 판단’만을 했다고 하지만, 재판관 개개인의 판단이 각자의 세계관이나 이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이번 사건의 토론과 결정문 작성 과정은 통상의 사건과는 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의 헌법재판 사건에서는 다수의견을 토대로 결정문 초안이 작성되고 이에 대해 이견이 있는 재판관의 소수의견이 제시된다.

헌재 관계자는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우선 재판관 각자가 의견을 제시한 후 기나긴 절충과 합의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 이후 주심 재판관의 표현대로 ‘정말로 힘든’ 토론을 거쳤다는 것이다.

기각 또는 인용(탄핵) 여부와 함께 논란이 됐던 것이 소수의견의 공표 여부. 다수의 재판관은 법규정 등을 근거로 소수의견 공개에 반대했다. 그러나 인용 의견을 낸 소수의 재판관은 공개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탄핵 인용 의견은 처음에는 9명 가운데 4명이었으나 최종선고 직전 1명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명의 주장 강도는 훨씬 강해졌다고 한다.

재판부는 결국 절충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 소수의견을 별도 공개하지 않는 대신 결정문에 그 내용을 상당 폭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다수가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 양보를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판부는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 등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여당 지지발언이 공무원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명백히 밝혔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 사이에서 탄핵 기각 쪽으로 대세가 결정되면서 다수의 재판관이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 소수의견쪽 재판관 의견을 수용했고, 그것이 결정문에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밖의 쟁점 즉 대통령측근 비리와 경제파탄 사유에 대해서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이 같은 결론은 예견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헌재의 절충적 결정으로 노 대통령은 ‘개운치 못한 승리’를, 야당은 ‘체면만 유지한 패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진정한 승부는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이번 탄핵사건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 요약
심리대상 구체적 쟁점 헌재의 판단 및 근거
탄핵절차 준수 국회가 탄핵소추 이전 충분한 조사 및 심사를 진행하지 않았는지 여부 충분한 조사 없어도 헌법과 법률 위반 아니다=탄핵소추 이전의 조사 문제는 국회의 재량이라는 국회법 규정에 따라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아도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
적법절차 및 원칙을 위반했는지 여부(대통령측은 “탄핵소추를 하면서 소추위원은 혐의사실을 정식으로 고지하지도 않았고 의견 제출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적법절차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 위반 아니다=국가기관이 국민과의 관계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지켜야할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대통령)에 대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탄핵소추절차’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
선거법 위반 대통령도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지는 공무원인지 여부 해당된다=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모든 공직자에 해당하는 기본적 의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공정 선거를 총괄·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선거 중립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가 선거법 9조의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올해 2월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의 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 선거법 위반이다=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다.
위의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가 공무원의 선거운동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60조를 위반했는지 여부 선거운동 한 것 아니다=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지지 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이 아니며, 대통령 발언이 수동적이고 비계획적으로 행해진 만큼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2003년 12월 19일 노사모가 주최한 리멤버 1219 행사에서 “여러분의 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나서달라”고 발언한 것과 올해 2월 5일 강원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 “국민참여 0415 같은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허용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한 발언 등의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헌법과 법률 위반 아니다=허용되는 정치적 의견표명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올해 3월 4일 대통령홍보수석을 통해 “선관위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과거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동원하던 시절의 선거관련법은 이제 합리적으로 개혁돼야 한다. 선거법의 해석과 결정도 이런 달라진 권력문화와 새로운 시대흐름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다. 대통령이 현행법을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할 의무와 부합하지 않는다. 모든 공직자의 모범이 돼야 하는 대통령의 언행은 다른 공직자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등 법치국가의 실현에 있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현행법의 정당성과 규범력을 문제삼는 행위는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2003년 10월 13일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이 헌법 위반인지 여부(대통령은 2004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저는 지난주에 국민의 재신임을 받겠다는 선언을 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국민투표가 옳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현행법으로도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을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안에 대한 결정’, 특정한 국가정책과 법안을 대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대표자에 대한 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헌법상 대표자 선출과 신임은 단지 선거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72조에 의해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선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2003년 4월 25일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내린 부적격 판정과 2003년 9월 국회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의결한 것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 헌법과 법률 위반인지 여부 위반 아니다=헌법이 규정하는 권력분립 구조 내의 정당한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해당한다.
측근 비리대통령 취임 이전과 이후에 발생한 측근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비리 행위가 탄핵 사유가 되는지 여부 사유가 되지 않는다=썬앤문그룹 자금 수수 등 2003년 2월 25일 취임 이전에 발생한 비리는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무관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살필 것도 없이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취임 이후 최도술(삼성 등에서 4억700만원 수수), 안희정(10억원 불법자금 수수), 양길승(향응 수수), 여택수(롯데 불법자금 3억원 수수) 등의 비리의 경우 대통령이 이들의 불법 행위를 지시·방조하거나 불법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소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국의 혼란 및 경제파탄 경제 악화 등의 책임이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의 성실한 수행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 탄핵심판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헌법 65조 1항은 탄핵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로 제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는 법적인 관점에서 탄핵사유의 존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소추위원이 주장하는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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