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장 “박정희 평가 반쯤 수정”…보수票겨냥 발언

  • 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56분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재계와 보수계층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정 의장은 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 CEO 포럼에서 “탈세와 회계부정으로 처벌받고 있는 기업인에 대한 대사면을 대통령께 건의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8·15와 같은 시점에 정경유착 등 현안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새출발 선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진실을 밝혀내고 그 토대 위에서 다른 발상법과 다른 행동양식, 다른 도덕적 재무장을 통해 전진하지 않으면 과거의 발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어느 시점에 새출발 선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의장은 이에 앞서 초청연설을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기자가 될 때까지의 대통령이 박정희(朴正熙)였다”며 “소년 시절부터 청년기를 거쳐 박정희는 극복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정치인이 된 뒤에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절반쯤 수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3년 전에 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만들고 10년, 20년 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준비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내가 가졌던 ‘박통’에 대한 생각이 일방적이었음을 알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의 이날 발언은 박정희 개발독재의 폐해를 비판해 왔던 열린우리당의 입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수층을 의식한 ‘총선용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시각을 의식한 듯 발언 직후 “우리가 겪고 있는 8년간의 경제 지체, 모든 모순의 뿌리가 개발독재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참여연대 김기식(金起式) 사무처장은 이날 발언에 대해 “정 의장은 외부적으로 드러난 이미지나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는 달리 개혁과는 거리가 먼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인”이라며 “보수표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CEO 포럼은 2001년 설립된 전문경영인 모임으로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 유상옥(兪相玉) 코리아나 회장, 조동성(趙東成) 서울대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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