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살아있는 권력’ 수사 미진하다

  • 입력 2004년 3월 8일 18시 36분


코멘트
6개월을 넘긴 검찰 수사 결과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10분의 1을 넘어 한나라당 823억2000만원, 노무현 캠프 113억8700만원으로 드러났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대선 캠프에서 오고간 불법자금의 실상을 파헤쳐 정치자금이 투명해지는 계기를 마련한 의미는 적지 않다. 그러나 5대 그룹에서 양쪽 진영에 제공했다는 대선자금의 격차가 너무 커 과연 선거에 승리한 쪽의 입구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검찰이 막판에 삼성그룹에서 안희정씨에게 준 30억원을 찾아내긴 했지만 5대 그룹 가운데 3개 그룹이 10분의 1 이하이고, LG그룹은 한나라당과 노 캠프에 준 돈이 150억 대 0이다. 이러한 결과만을 놓고 보면 검찰 수사가 공정성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검찰이 노 캠프 불법자금에 대해 철저한 수사의지를 보여줘야만 최종 수사결과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있다.

특히 노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관련된 대목에서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 한나라당의 김영일 서정우씨와 노 캠프 안희정 이상수씨의 불법자금 수수행위에 이회창씨와 노 대통령이 어느 정도 관여했고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총선 후 수사를 통해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실무자만 교도소에 보내고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빠져나가는 방향으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서야 되겠는가.

검찰은 경제 상황을 고려해 기업인들의 처벌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범죄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기업인에게도 관용을 베풀 것인지는 심각히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기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던 노 대통령은 이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걸핏하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하거나 정계 은퇴를 공언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10분의 1’ 발언에 대해서는 차제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노 캠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한나라당은 ‘차떼기 자금’의 본질을 호도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 불법자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의 잘못을 통회(痛悔)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사법처리된 현직 의원이 13명에 이르고 전직 의원, 정당 간부, 대통령 측근들이 다수 연루됐다. 비리 정치인 물갈이 효과도 검찰 수사의 순기능이다. 각 정당은 불법 대선자금에 관여한 정치인을 공천에서 철저하게 배제해 총선 후 재개되는 검찰수사가 정계 개편의 빌미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검찰은 불법 경선자금과 당선 축하금 수사에서도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권력을 잡은 쪽에 유리해 보이는 대선자금 수사만 하고 불리한 수사는 피해 간다면 검찰권의 공정한 행사라고 하기 어렵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