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부끄러운 자화상 고발합니다” 폭로글 파문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8시 56분


코멘트
《외교통상부의 내부 전산망에 일부 외교관의 부정부패 실상을 고발하는 글이 최근 게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외교부 내부토론 광장인 ‘나눔터’에 10월 15일 게시된 이 글에 나오는 외교관들의 공금유용 및 가족동반 해외출장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최근 조직개편, 내부혁신, 인사문제 등으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외교부는 내부의 치부가 대외적으로 알려진 18일 하루 종일 술렁거리는 모습이었다. 다음은 전산망에 뜬 글의 요지.》

▽공금 유용사례=전산망에 글을 올린 필자는 “사적으로 친구들과 만나 저녁 먹고 술 한 잔 하고는 법인카드 전표를 총무에게 내미는 상사들, 우리 부하 직원들도 ‘당신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있느냐’고 작당해 공금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나도 같이 더러워졌습니다”라고 자책했다.

그는 또 1박2일 출장예정인데 2박3일로 출장비를 끊어 차액을 챙기는 상사도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고급 음식점에서 직원들을 외국인으로 둔갑시켜 기름진 음식을 대접하는 상사보다는 우동이나마 자기 주머니에서 낸 돈으로 먹으면서 직원들과 웃으며 담소하는 그런 상사가 좋습니다”라고 밝혔다.

▽공무에 가족동반=필자는 “겸임국 신임장 제정을 위해 동부인 출장시 딸을 동반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의 외교관은 이를 위해 출장계획서와 지불결의서에 공관에 근무하는 총무 직원의 이름을 함께 올려 출장비를 탄 뒤 직원 대신 딸을 데려갔다는 것.

필자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예, 예’하며 면종복배(面從腹背)하지만 속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아실 겁니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공관 ‘밥장사’=공관 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사람 수를 부풀려 추가 경비를 착복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사람 수 몇 명 부풀려 챙긴 몇백 달러가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요”라며 “부하 공관직원은 물론이고 업무 보조원, 교민회 직원, 민간상사 직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겠습니까”라고 말해 이른바 ‘밥장사’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또 “이런 와중에 개혁이니 위상정립이니 하는 구호들은 공허하게만 들리는군요”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같은 내부 고발에 대해 조영재(曺永載) 외교부 기획관리실장은 “내부 토론이지만 이미 공개됐기 때문에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했다”며 “이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면 관련자들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박성웅(朴聖雄) 감사관은 “내부 토론 내용을 가지고 감사관실에서 조사할 경우 토론방을 위축시켜 외교부의 내실을 기하는 데 역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지만 지적된 문제에 착안해 공관들에 대한 감사를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자성의 글' 작성자 일문일답▼

외교통상부의 내부전산망에 자성의 글을 게재한 H씨(일본지역 공관 근무)는 18일 “자성의 차원에서 글을 썼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H씨는 이날 밤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혁 차원의 토론에 동참한 것인데 일이 확산돼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글을 작성한 것은 언제인가.

“10월 13일 외교부 내부 토론방에 올라온 선배의 글을 보고 15일 댓글을 달았다. 진솔한 고백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외교부를 개혁하자는 취지였다.”

―대사가 출장에 딸을 동행했다고 했는데, 직접 경험한 일인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고 이를 하소연하는 내용을 들었다. 96년도에 있었던 얘긴데, 그분도 퇴임하셨다.”

―외교부 내부전산망에서 토론이 시작된 계기는….

“자성의 기회를 갖고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내부적인 반성을 함으로써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누굴 고발하자는 것도 아니었고, 고칠 것은 고치자는 얘기를 한 것이다.”

―동료들의 반응은….

“진솔한 고백이라는 반응도 있었고, 우리도 공범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언론에 공개될 줄 알았다면 이렇게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