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사 투쟁’ 人倫에 어긋난다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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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투쟁 방식이 상궤를 벗어났다. 전농 회원들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등 국회의원들의 선영을 차례로 돌며 제사를 지내고 있고, 최근 노무현 대통령 선영에서는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말이 좋아 제사이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칠레 FTA가 국회를 통과할 경우 정부 당국자와 국회의원 조상 묘를 훼손하겠다는 위협이 담겨 있다.

일단 제사를 올려 사정을 한 뒤 그래도 안 될 때는 ‘적극적인 투쟁으로 징치(懲治)하겠다’든가, ‘국회의원 선친 묘라도 파내겠다’라는 전농 홈페이지의 글들은 ‘제사 투쟁’의 종국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사 투쟁’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장관이나 국회의원 조상 묘를 욕보이는 것은 인륜(人倫)에 어긋난다. 이런 식의 투쟁은 농민의 처지에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게 할 것이다.

소득 감소와 부채에 허덕이는 농민이 한-칠레 FTA가 가져올 농산물 가격 하락 사태를 걱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도하개발어젠다(DDA)와 FTA를 통해 시장 개방이 확대될수록 농산물 가격의 하락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농민의 불만과 걱정을 배경으로 전농 회원들의 사무실 점거 농성, 트랙터 시위, 천막 단식 농성 등 투쟁 방법이 격렬해지고 있다. 한-칠레 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 이후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된다.

정부는 농민에게 시장개방의 두려움을 없애 주는 소득보전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설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농민단체들도 시장개방의 대세를 인정하고 나라와 농촌이 함께 사는 현명한 노선을 추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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