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만에 되찾은 ‘군인의 명예’

입력 2003-12-03 18:33수정 2009-09-28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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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오빠가 ‘잘 했다, 잘 했다’ 외치는 것 같아요.”

3일 오전 수원지법 성남지원 3호법정. 허덕수씨(72·여)가 50여년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허씨의 오빠는 6·26전쟁 당시 8사단 16연대 1대대장을 맡았던 육사 5기 출신의 허지홍 대위(당시 28세·사진).

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허 대위는 안동지구 향로봉전투에서 공격 명령을 받고도 부대를 이탈해 후퇴한 죄로 1950년 8월 21일 사형을 당했다. 이 같은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허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53년 만에 군사법원의 판결문이 조작됐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이충상·李忠相 부장판사)는 이날 허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허 대위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육군 모 군단 고등군법회의는 실제 재판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판결문도 허 대위가 사살된 뒤 조작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은 당시 판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재심 판결의 대상이 아니지만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다”고 덧붙였다.

이 판결로 검찰의 항소가 없는 한 허 대위는 무죄가 되며, 유가족들은 법적 절차를 거쳐 국가로부터 보상과 국가유공자 가족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허씨는 1950년 8월 중순 허 대위와 같은 부대에 있었던 사람에게서 허 대위가 총살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정부에서 이를 확인해 주지 않자 1999년부터 직접 자료를 모아 2000년 육군보통군법회의에 재심을 청구했다.

허씨는 “정부에서 의문사진상규명 작업을 시작한 이후 오빠에 대한 사인을 수소문한 끝에 육군본부에 보관된 오빠의 인사기록에 재판기록이 없는데다 당시 연대 작전장교가 ‘허 대위가 조사나 심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한 것 등으로 미뤄 재판이 조작됐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당시 오빠가 연대장과 언쟁을 하다 사살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유가족들은 가장을 잃고도 슬퍼하지도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법정에는 허 대위의 부인 박세금씨(64)와 아들 허윤씨(55)도 참석했다.

아들 허씨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동안 가족들이 모두 쉬쉬했다”며 “어머니의 50년 응어리를 풀어준 고모와 재판부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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