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평화조약 용의 언급]美, 北核해결 '히든카드' 꺼냈나

  • 입력 2003년 9월 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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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과 아미티지의 럼즈펠드 따돌리기.’

미국 뉴욕 타임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핵 협상의 새로운 접근법(significant shift)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 전말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 신문이 5일 전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협상 전략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주장해 온 이른바 ‘more for more(하는 만큼 준다) 해법’. 북한이 여러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 핵 프로그램 폐기조치를 취하는 수준만큼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 또는 보장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평화조약(peace treaty)을 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아미티지 부장관은 지난달 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대북 강경파 인사들이 휴가를 가거나 이라크 사태에 몰입해 있을 때 부시 대통령에게 이를 건의해 최종 결심을 받아냈다고 이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베이징(北京) 6자회담(8월 27∼29일) 테이블에 앉아 있던 미국 대표단에 자신의 새로운 구상을 북한 대표단에 얘기해도 좋다는 지침을 내렸다는 게 보도 요지다.

실제로 이날 베이징 6자회담 과정을 브리핑하던 국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북한을 지칭하며 “그들이 무엇인가를 듣기 이전에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기 이전이라도 미국이 모종의 인센티브나 보장을 약속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신문이 보도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전략’이나 국무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북한이 베이징 6자회담에서 제시한 북-미간의 단계적 동시 행동 방식에 거의 근접해 있다. 미국이 중유제공을 재개하면 북한은 핵개발 계획 포기를 선언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 핵 개발활동 동결과 사찰 허용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북한 대표들은 미국 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제안들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회담에 참가했던 러시아 관리들은 전하고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전략이 과연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미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는 북한이 단계적 핵 폐기 조치에 응할 리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 가장 핵심적인 ‘평화조약’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한국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조약(treaty)이라는 단어만 보면 대북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불가침조약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만 미 행정부의 현재 태도로 볼 때는 좀 더 지켜봐야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외교소식통들은 부시 행정부가 결국 북한의 ‘안보 우려’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고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은 오래전부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해 왔다”면서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평화조약은 그런 개념까지 포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전 국무부 북한담당관)도 “(부시 행정부의) 이 계획이 실행되려면 궁극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평화조약 체결도 가능하다는 미국의 방침은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에 대응하고 협상에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창혁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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