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26분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손꼽히는 인문학자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엊그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특강에서 던진 질문이다.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자의 현실진단은 때로 어떤 사회과학자나 정치인들의 분석보다 통찰력이 깊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최근의 한국사는 혁명적 정열에 의해 움직여 왔지만 이는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는 엄밀히 말해 주류의 이동이라기보다 전복에 가깝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아니라 실력이다. ‘깨끗한 무능’보다 ‘손때 묻은 유능’이 실질적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핵심 참모와 개혁 전위대로서의 386그룹, 그리고 신당 주체세력은 자신들의 총체적 역량과 ‘혁명적 정열’의 공과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이를 ‘이성적 정열’로 전환해야 한다. 김 교수의 표현처럼 ‘시인으로는 좋지만 정치인으로는 부적절한 인사’들도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현 정부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이면서도, 혁명을 그 행동모델로 하고 있어 이 모순이 혼란을 만들어낸다”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코드 맞추기, 언론 투쟁, 선전 중시, 정치교육 모임 등 많은 증후는 최종적 결전을 위한 대열정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김 교수의 진단이 지나친 우려이기를 바란다.

현재 ‘노무현 선장’이 키를 잡고 있는 대한민국호는 출발선을 떠난 것은 분명하지만 폭풍우에 휩싸여 아직 제 항로를 찾지 못한 형국이다. 원로 학자는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무엇보다 타협과 합의, 이성적 토의, 제도와 법, 정치 행동의 민주적 절차가 중요하다는 ‘절차적 인민주권’을 난국 타개의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집권세력은 지성인의 고언(苦言)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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