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구U대회 불참시사]'南길들이기'에 속수무책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41분


북한이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불참을 시사한 가운데 최성곤 계명대 교수(오른쪽) 등 북한팀 서포터스가 18일 계명대 태권도센터에서 환영 플래카드와 한반도기 등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연합
북한이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불참을 시사한 가운데 최성곤 계명대 교수(오른쪽) 등 북한팀 서포터스가 18일 계명대 태권도센터에서 환영 플래카드와 한반도기 등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연합
북한이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불참을 시사하고 약속된 남북접촉 일정을 무산시킨 것은 최근 국내 일각의 반(反) 북한 분위기를 좌시할 수 없다는 차원의 ‘남한 길들이기’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런 분위기는 북한의 군부 등 강경파가 주도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당국은 분석했다.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은 18일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주최한 조찬모임에서 “(반북 집회 도중) 인공기가 훼손된 것을 놓고 북한 군부 강경파가 (온건파를 누르고) 묵과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성명에서 “8·15 행사에서 광란적인 반공화국 소동이 벌어졌다”며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이런 기류를 반영했다.

김일성대학 강사 출신인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위현장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훼손된 것은 ‘체제가치’를 최우선시하는 북한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회 기간 중 남북화합 분위기를 기대했던 정부로서는 북한이 갑작스럽게 부리는 ‘몽니’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최종 불참통보는 아니다. 과거에도 참가 여부를 번복한 전례가 있는 만큼 대회 개막일인 21일까지 기다려보자”며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오후 들어 북측이 18일로 약속된 4대 경협합의서 교환은 물론 19∼20일 열리는 철도 및 도로연결을 위한 실무접촉 일정 잡기도 거부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18일엔 분위기가 얼어붙은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속내는 19일 중 방송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하루만 보고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보수층의 집단행동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의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때문인지 나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무회의 참석 직전 기자들에게 “남북이 상대방의 문화체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자세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제대회를 며칠 앞두고 불참 의사를 비친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릴 악수(惡手)를 둔 것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日취재진 “北 불참땐 철수할 것”▼

북한이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불참하면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학생 선수들로 참가자격이 제한된 유니버시아드는 기록과 승부를 겨루는 대회라기보다 ‘축제’의 의미가 더 크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여기에 북한 출전의 카드를 묶어 유니버시아드를 세계적인 이벤트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북한의 불참은 당초 기대했던 대회 위상의 추락을 의미한다. 개회식과 폐회식에서의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 북한 응원단 등 기대했던 ‘효과’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조직위 관계자들이 ‘반쪽 대회’를 우려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우려는 외국 취재진들의 철수 움직임에서도 감지된다. 300여명의 외국기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언론들은 북한이 불참하면 대부분 짐을 꾸리겠다는 입장. 22명이 취재진으로 등록한 일본 아사히TV는 “북한의 불참이 확정되면 우리는 모두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대구시는 이번 대회를 통해 총 7300억원 이상의 생산 및 고용 유발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참가로 대구경북 지역이 세계 언론에 집중 부각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분석이어서 북한이 불참할 경우 효과가 예상을 크게 밑돌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참가에 대비해 선수촌 경기장에 한 시설투자 등은 모두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된다.

대회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우선 북한이 참가하기로 한 여자축구, 남자배구는 조 추첨과 경기운영방식 변경이 불가피하다. 3개팀이 1개조로 예선을 벌일 예정이던 여자축구는 북한이 빠짐으로써 조 편성을 다시 해야 할 형편이다. 개인종목에서도 하프마라톤의 김창옥, 양궁의 최옥실 등 북한 스타들이 불참해 김빠진 대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관중 동원계획도 구멍이 뚫리게 됐다. 입장권 판매가 지지부진한 가운데서도 북한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은 여자축구 예선 2경기 예매율이 50%가 넘는 등 관심을 모았던 터다. 구연길 조직위 입장권판매부장은 “북한이 불참하면 입장권 환불 및 항의사태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부산아시아경기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던 미녀응원단을 볼 수 없게 된 것도 대회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그동안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뒷바라지하고 공동응원하기 위해 땀흘려온 시민들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북한 선수단 숙소 청소 등을 담당했던 대구새마을부녀회 박효강 회장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며 안타까워했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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