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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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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영웅 루이스 거스너가 몰락 위기의 IBM을 부활시킨 과정을 기록한 이 책은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번역돼 많이 팔렸다. 직역한 원제는 ‘누가 코끼리는 춤출 수 없다고 말하는가?’다.
국민에게 절박한 게 뭔지 아나
▼국민에게 절박한 게 뭔지 아나 ▼
20세기 초에 등장한 IBM은 1980년대 말까지 경이와 선망의 지구촌 기업이었다. 하지만 3년간 160억달러의 적자를 내고 ‘IBM은 끝났다’는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93년을 맞았다.
이때 외부에서 영입된 최고경영자(CEO)가 거스너였다. 노 대통령은 바로 그의 성공 스토리를 휴가지에서 읽을 4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골랐다. ‘코끼리…’를 읽으면서 대통령은 어떤 부분에 공감의 밑줄을 칠까.
IBM이 CEO 자리를 제의한 데 대해 거스너는 “미국의 경쟁력과 미국 경제의 번영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책임을 맡도록 부탁받았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IBM이 망하는 것은 기업 하나가 사라지는 것 이상의 영향을 미국에 주리라 믿었다고 후술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에 대한 국내 각계의 인식도 이 정도 될까.
노 대통령은 지난주 법인세율을 내릴 뜻을 비치면서 “권력이 점차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투자 촉진을 순수하게 나라 경제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생각하지 않고 정부와 기업간 ‘힘의 관계’ 차원에서 보는 것일까. 대통령의 기업관이 그런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거스너는 CEO로 공식 발표된 날 50명의 IBM 중역들과 상견례를 했다. 이 자리의 남자 중역들은 한결같이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거스너의 셔츠만이 파란색이었다. 몇 주 뒤 중역회의가 다시 열렸을 때는 거스너만이 흰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우두머리의 ‘코드’가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한편으로 우두머리도 다른 문화에 얼마나 담담하게 접근하는지를 보여주는 삽화 같다. 대통령부터 말단까지 곳곳에서 편을 갈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를 외쳐대는 나라 안 사정이 어른거린다.
중역들 앞에서 거스너는 “이전의 성공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기존 중역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분명했다고 그는 책에 썼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이르기까지의 성공 역정을 떠올리며 ‘누가 뭐래도 마이 웨이’를 고집하기엔 보호막이 점점 엷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코드가 많이 다르더라도, 이제는 사심(私心)이 없을 원로들에게나마 길을 묻고 그들이 가리키는 길로 몇 발짝 걸어 가 보면 어떨까. 그것이 리더의 참 용기일 수 있다.
거스너는 CEO가 된 지 보름 뒤 처음으로 산하기관을 공식 방문했다. ‘신중하게 고른 끝에’ 찾아간 곳은 뉴욕의 연구소였다. “나는 연구소가 IBM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의 연구는 IBM의 개혁이 고객의 실제적이고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를 춤추게 하라 ▼
지난 정부 때도 그랬지만 노무현 정부에선 ‘개혁’이 더욱 넘쳐난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실제적이고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개혁’이 어떤 것인지 대통령부터 원점에서 다시 숙고해 주기 바란다.
취임 4개월 뒤 거스너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장 IBM에 가장 쓸모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비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수익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 회사가 어떤 비전을 갖고자 한다면 그 비전의 첫 번째 틀은 돈을 버는 것, 그리하여 회사의 재정 상태를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견지에서 우리는 수익을 내는 데 전념하고 있다.”
진정한 비전의 중요성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비전이라는 이름 아래 되풀이되는 공허하고 원론적인 구호들을 냉소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지금 한국의 지도자라면 나라 경제의 회복이 첫 번째 비전이라며,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 방법을 찾는 데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 같다.
‘코끼리…’를 10분의 1도 음미하기 전에 지면이 다 찼다. 노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나라를 춤추게 할 답을 생각할까.
배인준 수석 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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