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세금 값' 해야 정부다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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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저항도 국민의 임무다. 중국이나 아일랜드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관료에게 국민이 멍청하게 당할 이유가 없다.”(4월 1일 민병균 자유기업원장, 한 신문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은 열두 달 가운데 꼬박 석 달은 세금 내기 위해 일한다. 30년 전에는 7주를 일하면 연간 세금을 낼 수 있었다.

납세가 국민의 의무라면 정부는 국민이 억울하지 않을 만큼 ‘세금 값’을 해야 한다. 하늘이 내린 정부도 아닌데 일은 볼품없이 하면서 세금은 주머닛돈처럼 쓴다면 박수가 나올 리 없다.

▼말이 국민 배부르게 해줬나 ▼

최고위 국가기관인 청와대부터 이젠 세금 값 제대로 하기 바란다. 지난 반년은 솔직히 세금이 아까웠다. 그 무성한 말이 국민 배부르게 해 줬는지 묻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잘못한다’는 쪽으로 민심이 기울고, 주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면서 수습을 떼었으면 한다. 여론조사를 외면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로 오늘에 이른 대통령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자주국방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미군 없이 발 뻗고 잘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처지에 정부는 한미동맹 균열과 봉합의 냉탕 온탕을 실속 없이 드나들었다. 그 중간기착점이 자주국방론인 듯하다.

자주국방을 정부 당국자들 월급 쪼개서 할 것인가. 한다면 국민 혈세로 해야 한다.

국방연구원은 자주국방을 위한 전력증강 비용을 209조원으로 추계했다. 기간을 20년으로 잡아도 연평균 10조원을 웃돈다. 10년이면 연간 21조원꼴이다. 실제론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 허리가 더 휘어야 한다. 게다가 방위비 부담만큼 민간 투자와 소비를 줄여야 하니 성장 둔화와 복지 주름살로 이어진다. 자주국방과 소득 2만달러를 노래방 메들리처럼 한 마이크로 가볍게 부를 형편이 아니다.

대통령의 실세 비서는 한총련 학생들이 미군 장갑차를 점거하고 성조기를 불태운 직후에도 미국측의 분노를 부채질하듯 “한총련의 합법화가 어떻게든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한총련의 미군부대 앞 집회를 허가해 장갑차에 뛰어들 빌미를 주었다. 많은 국민은 이런 청와대와 경찰을 위해 세금을 낸다.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은 이 나라 대법원이며 판결은 엄연히 살아 있다. 한총련을 움직이는 운동가들은 세금을 얼마나 낼까.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이름은 알아도 영해를 지키려다 서해교전에서 순국한 장병 이름은 모르는 안보 당국자. 무기고에서는 총을 도둑맞고, 장병 복지기금을 가로챈 장군 등은 감형하거나 풀어 주고, 군사장비 구입 원가는 엉터리로 계산해 혈세를 날린 국방 당국자. 국민은 이들을 위해서도 세금을 낸다.

납세의무에 국방의무까지 묵묵히 다하는 국민에겐 자주국방론 이전에 눈앞의 군기(軍紀)를 다지고 대다수 군인의 사기를 높이는 통수권자 모습이 더 커 보일 것이다. 사격 훈련장이 점거되고 군기에 빨간불이 켜지기까지는 정권이 온상 역할을 했으며, 이것이 안보 불안의 중요한 실체임을 알았으면 한다.

▼정책표류에 더 억울한 납세자 ▼

노 대통령은 6월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국민의 세금이 투자되는 만큼 정보전문가, 프로페셔널이 돼 달라”고 했다. 거기만이 아니다. 청와대 진용부터 프로여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펴는 정책과 서비스가 국민의 행복권을 최대한 뒷받침할 때 비로소 세금 값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 인사가 적재적소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사방에서 나와도 별 소용이 없다. 내 사람 내가 쓰고 내가 책임진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코드 동아리’를 깨지 않고는 청와대가 세금 값 하기 어려워 보인다. 납세자들은 일부 청와대 사람들의 무능하면서 독선적이고 해이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많이 봤다. 이 판국에 청와대는 8개월 뒤 총선의 앞바람까지 잡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라’를 가훈이라고 쓴 적이 있다. 대통령에게 청와대 사람들은 남이 아니다.

수많은 정책들도 아직 말 속에서 춤춘다. 더구나 경제부총리가 이 말 하면 청와대는 저 말 하는 식이라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정책이 불확실하고 혼선을 거듭하는 데 따른 비용도 결국 국민이 물어야 한다. 그래서 세금 내기가 곱으로 억울하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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