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신문과 대통령의 ‘제자리’

  • 입력 2003년 9월 1일 18시 27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은 제 영역에서 제자리를 찾고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취임 6개월을 자평했다. 그러면서 언론도 제자리를 찾으라, 언론을 바꾸겠다고 거듭 말했다.

공무원들에게는 자신과 언론이 갈등관계라고 밝혔고 언론에 대한 본인의 태도에 감정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경제신문 회견에선 요새 자신의 인기가 아주 낮은 이유로 첫째는 본인의 ‘시행착오가 있었으리라’고 했고, 그 다음은 언론이 ‘안 봐줬다’는 점을 들었다. 언론 보도에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그렇게 지시해도 공무원들이 ‘안 들어 먹는다’고도 했다. 언론의 횡포에 맞설 용기가 없으면 그만두라고 장차관들을 몰아친 것은 한 달 전 국정토론회에서였다.

▼‘비판’에 화낸다고 국정 풀리나 ▼

한마디로 ‘언론’이라고 하지만 그중에는 대통령 코드에 맞추려는 매체도 많다. 또 언론 안팎의 대통령 우군세력이 비판세력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나는 본다. 우선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 세금을 써 가며 조직적으로 국정을 홍보한다. 그럼에도 지지 추락의 큰 요인이 언론 탓이라고 공언하는 것은 대통령의 ‘제 할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또 지난 금요일 전국 기초의회 의장들에겐 ‘정권과 언론의 야합관계를 고치자는 것’이라고 했다. 비판하는 언론이 정권과 야합관계일 수는 없다. 그럼 누군가를 지지하면 그것이 야합인가. 대통령을 많이 ‘봐주는’ 듯한 매체도 있지만 그것도 야합관계라서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대통령이 경제관 노사문제 대외관계 등에서 국익 우선의 모습을 보일 때 지지하고, 대통령 스스로 갈등의 중심에 서거나 국정 운영에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헷갈리는 신호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할 때 비판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갈등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서 갈등관계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통합의 구심점이어야 할 대통령의 ‘제자리 찾기’는 아닐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비판적 신문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그 반대편을 결속시키고 통치를 용이하게 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것이 민주적 지도자의 제 모습일 수도 없다. 감히 말한다.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정책 시스템부터 손질하는 노력이 언론을 탓하는 것보다 생산적이다. 정책 추진과정의 시스템 혼란을 안타까워하는 공무원들의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린다.

청와대 사람들은 언론이 우리 사회의 의제를 바로 설정하지 못한다고 소리를 높이지만, 허구한 날 언론과의 갈등관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대통령의 바른 의제설정이라고도 나는 보지 않는다. 신문에도 사명감이 있다. 대통령이 사명감을 독점할 일은 아니며, 가치관도 대통령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알 권리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알리고 싶어 하는 정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납세자인 국민 개개인이 생업을 제쳐두고 쫓아다닌다 해도 사실과 진실을 캐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신문이다. 독자는 신문을 통해 알 권리를 누리려 하고, 판단의 잣대도 신문이 제시하기를 요구한다.

신문이 권력을 의심하기도 하고 의혹 단계부터 진실 찾기에 파고들고 대통령 언행을 공론에 부치는 것은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한 궂은일이다. 이를 비켜 가면 신문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독자 편에 서는 것이 곧 신문의 제자리 찾기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신문의 독자도 국민이다.

▼국민 편에서 볼 수밖에 없다 ▼

대통령은 언론한테 ‘무진장 맞았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표적으로 삼는 듯한 이른바 메이저 신문도 무진장 맞고 있다. 공격 총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는 대통령을 시작으로 같은 코드의 우군집단과 그 편에 가까운 숱한 매체들이 메이저 신문을 포위해서 벌이는 흠집 내기 공세가 얼마나 집요한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국민의 전파인 공영TV가 일부 신문을 조준해 어떤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지도 우리는 보고 있다. 행정권력이 자유시장주의를 흔드는 방식으로 신문의 내부구조와 신문시장의 판도를 바꿔 보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인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는 신문 스스로 견뎌낼 수 없다. 나아가 상위가치인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낼 수 없다. 물론 신문은 독자가 아닌 국민까지 생각하며 부단히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