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 권노갑씨, DJ방문 "죄송" 오열

  • 입력 2003년 7월 2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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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전 고문은 무죄판결 직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해 2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권 전 고문은 자택에 들어서자마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결백이 밝혀져 달려왔다”며 오열을 터뜨렸고 김 전 대통령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생 많았다. 그런 일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무죄가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동행한 민주당 이훈평(李訓平) 의원이 전했다. 권 전 고문은 김 전 대통령 퇴임 때 잠시 동교동을 찾은 이후 한번도 김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고 4월 5일 김 전 대통령 손녀딸의 결혼식에도 불참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진승현씨 돈 5000만원 받은 혐의, 권노갑씨 항소심서 무죄▼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2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이날 오후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하고 있다.-연합

금융감독원 조사 무마 청탁 대가로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을 통해 진승현(陳承鉉)씨에게서 50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기소된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지법 형사항소8부(고의영·高毅永 부장판사)는 2일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할 증거는 김씨와 진씨의 진술밖에 없으나 이들의 진술에 신빙성을 두기 힘들다”며 “당시 정황을 고려해 볼 때 권씨가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몇 차례 진술을 번복했고 당시 최규선(崔圭善)씨 문제로 피고인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김씨가 피고인이 모르는 진씨 관련 청탁을 하고 권씨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진씨는 피고인의 집에 들어가 돈이 든 쇼핑백을 거실에 놓고 나왔다고 진술했지만 현장검증 결과 피고인 자택의 내부구조는 진씨의 설명과 많은 차이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돈이 전달됐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권 전 고문은 재판 직후 “한마디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권 전 고문은 2001년 7월 진씨와 함께 종로구 옛 평창동 자택을 찾아온 김씨에게서 한스종금과 리젠트종금 등 진씨 계열사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 무마 등에 대한 청탁과 함께 진씨의 돈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5월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가 지난해 8월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권노갑씨 무죄 판결▼

법원이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에게 2일 무죄를 선고한 것은 한쪽의 일방적인 진술만을 토대로 유죄를 단정지을 수 없다는 원칙론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항소심의 이 같은 판결이 확정된다면 검찰은 금품수수와 대가성 등에 대한 명확한 입증 없이 권 전 고문을 범죄자로 몰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검찰은 의심스러우면 유죄로 인정해 기소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법원은 의심스러우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법원은 진술로는 유죄를 단정짓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증거에 대한 가치판단도 다르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례도 현금이 오간 뇌물사건의 경우 돈을 준 사람의 진술뿐 아니라 돈을 준 경위와 동기가 상식에 부합하는지 등을 판단해 유무죄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욱이 권 전 고문 사건의 경우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떠나 검찰의 수사에 허점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진승현(陳承鉉)씨는 검찰에서 “권 전 고문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는 김은성(金銀星)씨를 보고 돈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뒤 권 전 고문의 집 내부구조도까지 그렸다. 그러나 재판부의 현장검증 결과 권 전 고문의 집 거실은 현관에서 복도를 따라 4m가량을 걸어가야 볼 수 있는 등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번 판결에 대해 검찰 일각에서는 “뇌물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도 없는 가운데 은밀히 현금이 오갔을 경우 객관적 증거 입증이 불가능한데도 법원이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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