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석학 좌담]"한국, 勞-使-政 충돌 줄여야"

  • 입력 2003년 7월 1일 18시 03분


지난달 30일 동아일보가 호텔 신라에서 주최한 ‘경제석학들과의 좌담’에서 참석자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로버트 배로 교수, 웬디 돕슨 교수, 박영철 교수, 완다 쳉 IMF 아태(亞太)국 부국장.-안철민기자
지난달 30일 동아일보가 호텔 신라에서 주최한 ‘경제석학들과의 좌담’에서 참석자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로버트 배로 교수, 웬디 돕슨 교수, 박영철 교수, 완다 쳉 IMF 아태(亞太)국 부국장.-안철민기자
《한국 사회에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노사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한국 경제를 진단하기 위해 본보는 저명한 경제학자 4명이 참여하는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영미(英美)식 자유방임주의적 접근과 정부가 법적 테두리를 제공하고 노사간 협상 결과를 존중하는 범(汎)유럽식 방식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다만 준법(遵法)을 원칙으로 하되 정부-기업-노조간 충돌을 줄이기 위한 제도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는 데는 참석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좌담은 지난달 30일 서울 호텔신라에서 진행됐다.》

사회=한국의 노사(勞使) 문제가 심각하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특히 정부의 역할은….

박영철 교수=최근 노조 파업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겠다. 노조의 요구는 전통적으로 해왔던 것이다. 임금인상과 더 나은 근로조건, 그리고 정부의 양보를 요구한다. 다른 나라와 다른 것은 이들의 자세다. 급진적이고 단호하다. 정부는 예년에 비해 파업빈도가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업의 정도가 다른 신흥시장 국가들에 비해 어떠한지는 의문이다.

완다 쳉 부국장=노조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외국인투자자의 시각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 할 때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로 노사관계를 들고 있다. 최근 방한한 모리스 그린버그 미국 AIG 금융그룹 회장도 노조문제를 ‘가장 우려하는 요인’이라 언급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말했듯이 법이 준수되고 불법 파업은 근절돼야 한다. 노 대통령은 또 노사간 대화의 중요성을 말했다.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협상과정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재가동돼야 한다.

사회=정부가 노사간 협상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문제라고 하면서 노사정위원회가 가동돼야 한다고 강조하면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쳉=지금처럼 노사간 협상과정에서 정부가 기업측에 양보를 요구하다 보면 노조의 기대가 더욱 커지고 결국 노동시장이 경직된다. 이 때문에 노사정위원회가 중립적인 중재자로 대화의 장을 유지해야 하고 정부의 역할은 법을 집행하는 데 한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개입자가 아니고 중재자로 역할해야 한다. 97년 외환위기 직후 가동된 노사정위원회는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웬디 돕슨 교수=노동계의 불만이 무엇인지 또 그 불만이 국가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가 정부의 양보를 요구하고, 그 결과 비용 상승과 함께 생산성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노조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로버트 배로 교수=영국과 프랑스의 서로 다른 대응 방식에서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가 파업에 대처한 방식은 노동운동의 전환점을 가져왔다. (문제 해결을 노사간 협상에만 맡겨놓고 정부는 불법적 행동에 단호히 대응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후 영국에서 노조 파업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최근에도 트럭 노조의 파업이 있었다. 요구의 정당성과 관계없이 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노동자는 노무현 정권의 중요 구성 요소이다. 그들이 현 정권의 탄생을 지지했다. 노 대통령은 그간 노조에 우호적이었으나 이젠 파업 결과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돕슨=중요한 것은 정부-기업-노조간 충돌을 줄이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제도를 갖추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회=노사간 협의에 모든 것을 맡기는 영미식 자유방임주의를 채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박=외국을 보면 네덜란드 덴마크 아일랜드 등에서 노사정 3자가 참여하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가 이런 사례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돕슨=그 위원회를 콤팩트(Compact·합의)라고 불렀다. 아일랜드는 한국에 좋은 교훈을 줄 수 있다.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노사정 모두가 이견이 없이 노력했다.

쳉=노사 상호간 신뢰를 높이는 방안을 정부가 강구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의 노사정위원회는 97년 위기 상황에서 유용한 역할을 한 경험을 갖고 있다.

배로=한국 정부는 이제까지 시장 중심적인 정책을 펴서 효과를 봤다. 유럽식 스타일로 간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돕슨=시장 중심적인 정책을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의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찾아보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 한국은 자신만의 역사와 특성을 갖고 있고 그래서 나름대로의 모델을 가져야 한다.

쳉=외국의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移植)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역사와 경험을 고려해 자신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원칙은 역시 준법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외국투자자에게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실업과 재교육에 대비하고) 건전한 노사 관계를 위한 대화를 유도해야 한다.

사회=하반기 경기 전망을 어떻게 하는가. 한국은 미국과 중국경제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쳉=세계적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함과 국내 경기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어려웠다. 수출도 그리 좋았다고 볼 수 없다. 미국 경기와 약세인 달러의 불균형이 회복될 때까지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한국의 성장률은 올해 4%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내년에는 나아질 것이다.

돕슨=중단기적으로 중국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구조조정, 교육, 생산성 향상, 서비스 부문이 어떻게 발전되느냐가 앞으로 중국의 장기적 성장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배로=이라크전쟁 종식으로 국제 안보적인 불안요인이 제거됐다. 최근 미국의 감세정책으로 투자와 취업노력에 인센티브가 생겼다. 주식시장의 회복과 저금리 등의 요인으로 내년에는 미국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제까지 6%대의 성장을 이룩했다. 앞으로 4%대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또 극복해야 할 도전이 있다면 어떤 것이겠는가.

돕슨=시장을 더욱 투명하게 운영해야 하고 정부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투자와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배로=한국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도전은 북한 문제이다. 남북한 통일에 따른 경제적 통합이 주는 충격은 대단히 클 것이다. 5년 이내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북한 체제에서 정치적 변화가 생긴다면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 등과 상관없이 급속한 통일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쳉=금융권에서는 투신사와 신용카드사의 구조조정, 기업부문에선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개혁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교육과 인적자원 개발에 힘을 쏟음으로써 앞으로 지식기반 경제로 원활하게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좌담 참가자▼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거시경제 및 경제발전, 금융경제학 분야의 석학

△비즈니스위크, 현 비즈니스위크 칼럼니스트

△현 미국 후버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및 하버드대 교수



●웬디 돕슨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캐나다 재무부 부차관 역임

△세계무역기구(WTO)와 동아시아지역 전문가

△현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완다 쳉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박사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 전문위원

△외환위기 당시 IMF 한국담당 책임자

△현 IMF 아시아·태평양국 부국장



●박영철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현 고려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