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왜 안풀리나]뿌리깊은 정부불신…사태 더 꼬인다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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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피해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때 진정기미를 보였던 화물연대 파업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여러 요인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화물연대측의 요구사항을 둘러싸고 정부와 화물연대간에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에서 큰 허점을 보이고 있으며 파업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에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물연대의 뿌리 깊은 대(對)정부 불신과 지도부의 장악력 부재, 파업 참가자들의 업종 특성 등도 사태를 점점 더 꼬이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핵심 쟁점에서 평행선=화물연대의 대정부 12대 요구안 가운데 가장 핵심사항은 경유세(경유에 붙는 교통세)를 깎아달라는 것.

하지만 정부는 이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버스 택시 등 다른 운수업계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데다 환경 보전 등을 이유로 추진 중인 에너지 세제(稅制) 개편 방향과도 맞지 않다고 보기 때문. 반면 화물연대측도 이 부분에 관해 아직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지입차주의 노동자성(性) 인정문제와 근로소득세제 개선 요구 등을 둘러싸고도 정부와 화물연대 간에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의심받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정부 안에서 이번 사태를 종합적으로 관할하고 조정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는 화물연대 파업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은 12일에서야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을 반장으로 하는 비상대책반을 가동했다.

문 실장은 “청와대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부처에 전화를 걸어 지시하는 등 직접 개입해 사태를 풀어나가는 것은 옛날 사고방식”이라며 부처 중심으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후 부처를 담당하는 수석비서관제도가 폐지되면서 청와대 내에서는 위기상황을 맞고도 정책실과 국정상황실 민정수석실 정무수석실 등이 제각각 따로 논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처간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을 조정해야 하는 국무총리실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14일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미 동원했지만 진척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 안에서조차 “화물연대 및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 대통령은 결국엔 우리 편’이라고 믿는 것이 사태의 조기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믿을 것은 민심의 변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질타하던 여론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국가기간시설인 수출항만을 볼모로 삼는 불법행동은 용납 안 된다’는 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13일 국무회의에서 고건(高建) 국무총리의 엄정대처 지시가 있었음에도 상당수 장관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혼선을 빚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운행 강제방법 전무=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개인 사업자라는 점도 이번 사태의 조기 해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반적인 노조 파업은 공권력을 투입, 지도부를 검거한 뒤 대체 인력을 투입하면서 조업 재개를 유도하는 방식을 밟으면 처리된다.

하지만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은 회사와 고용관계의 노동자가 아니다 보니 이 같은 절차를 밟을 수가 없다.

이들 조합원이 항만봉쇄 등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 경기 의왕시 경인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처럼 조기 퇴근하거나 출근하지 않으면서 ‘내 차를 운행하지 않는’ 방법만으로도 물류를 마비시킬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뿌리 깊은 대정부 불신=화물연대의 주요 요구사안 가운데 하나인 지입제 철폐의 경우 정부가 95년부터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사업자 단체 등의 로비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또 99년에는 이듬해 하반기 시행하기로 했으나 마찬가지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증폭됐다. 화물연대 부산지부가 12일 밤 정부합의안 수용 찬반투표 과정에서도 “10년 전부터 지입제와 다단계 알선 등 화물운송업계의 병폐 개선을 요구했으나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화물연대 지도부의 장악력 부재=지입차주들의 단체인 화물연대는 엄밀한 의미의 노조가 아니다 보니 다른 노조처럼 전국적인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지역별로 취급하는 화물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보니 이해관계도 일치하지 않아 지도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집행부가 ‘파업 해제’ 등을 전제로 협상을 진행 중일 때에도 파업이 벌어지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10일 밤 운송하역노조와 화물연대 부산지부의 지도부가 파업유보 및 운행복귀 결정을 내렸다가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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