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正 속도조절論]盧 "불안감 없게" VS 檢 "예상밖 발언"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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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재계와 정치권 사정에 나선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검찰을 겨냥해 ‘사정 속도조절론’을 제기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청와대측은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검찰 일각에서는 검찰의 독립을 강조해 온 노 대통령의 의지와는 배치되는 또 다른 형태의 수사간섭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입장▼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26일 ‘사정(司正)활동 속도조절’ 발언은 최근 일련의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세간에서 일고 있는 기획사정이라는 추측을 불식시키면서, 검찰을 향해 우회적 경고를 던지기 위한 이중 메시지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최근 검찰이 정치권 및 재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데 대해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하자 ‘그런 의도가 없다’고 명확한 선을 그음으로써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개혁 불안감’을 씻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 수사가 ‘검찰 개혁’을 가로막으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음모론적 시각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 카드와 한시적 특검제 상설화 등을 통해 새 정부가 강한 검찰 개혁의지를 내비치자 이를 막기 위해 검찰이 먼저 선수를 침으로써 개혁추진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새 정부의 기류를 고려해서 그동안 미뤄왔던 사건 등이 일거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검찰의 정치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청와대는 과거 대통령이 법무장관과 민정수석비서관을 통해 사실상 검찰을 장악해왔던 관행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은 이와 관련, “현재 민정수석실은 검찰과 어떤 채널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는 노 대통령의 지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며 어떤 사건은 국익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도 하겠지만, 그런 판단조차도 검찰이 자체적으로 하도록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할 생각이다”고 강조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검찰 입장▼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6일 ‘사정(司正) 활동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해 많은 검사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의 배임 혐의와 민주당 이윤수(李允洙) 의원의 수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나왔기 때문이다.

대검의 한 검사는 “노 대통령이 내세우는 검찰 개혁의 목표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라고 알고 있는데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수사 속도 등을 언급하는 것은 검찰에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고검의 한 검사는 “수사는 검찰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뜻인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밖의 말을 듣고 보니 노 대통령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 지방의 한 간부급 검사는 “관행을 깨고 새로운 검찰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검사 출신이 아닌 젊은 여성 변호사가 법무장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통령이 수사 활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의 답습”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검찰도 이제 평검사들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오늘 발언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검사들은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특정 사건 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정권 초기 사정에 대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전 정권 초기에 특정 집단이 집중적으로 수사를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우려의 표현을 한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도 “수사를 못하게 해야 간섭으로 볼 수 있는데 노 대통령이 그런 의도를 내비친 것 같지는 않다”고 해석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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