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밝힌 '경협합의서' 의문증폭]“정부, 뒷거래說 의식 공개막아”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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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송금한 2235억원의 성격에 대해 정부와 현대측은 같은 해 8월 22일 현대아산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와 체결한 대북 사회간접자본(SOC)개발사업의 30년간 독점권 확보의 대가라고 주장해 왔다. 대북 SOC 개발사업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얘기한 ‘7대 남북경협사업’. 지금까지 합의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던 현대측은 9일 이 합의서의 개략적인 내용을 공개했으나,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많다.》

▼대북 경협 합의서 내용▼

현대아산은 9일 현대측이 확보한 7가지 대북 사업에 대한 독점권은 ‘북측 또는 남측의 자금 이외에 제3국 기업의 자금이 들어오더라도 개발 운영 관리 등 모든 권한을 현대가 갖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2000년 5월 북측과 7대 사업에 대해 구두로 합의하고 8월 체결한 합의서에는 7대사업과 이에 대한 30년 독점권이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대북 SOC사업권 합의서에 명시된 7대 사업은 △남북철도연결 △통신사업 △전력 이용 △통천 비행장 건설 △금강산 저수지의 물 이용 △관광명승지 종합개발 △임진강댐 건설 등이다. 이 관계자는 “개성공단 건설과 일부 수정된 금강산 사업, 고선박 해체 등 몇 가지도 이날 함께 합의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또 다른 현대 관계자는 “합의서에는 SOC 사업 시기나 경협 합의에 따른 계약금액 등이 적시돼 있지 않았다”며 “다만 30년간 독점권을 갖는다는 것은 사업 착수시점부터 30년간이라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사업권 대가를 왜 미리 보냈나=현대와 북측이 합의서를 체결한 시점보다 두달 이상 앞서 북한에 미리 돈을 보낸 이유에 대해 현대측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순수하게 대북 SOC 사업권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면 2000년 6월 9일경부터 서둘러 돈을 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측 관계자는 “대북 SOC사업이 착수되면 최대 수혜자는 현대건설이 될 것이다”며 “북한에 송금된 돈의 일부를 현대건설이 부담했을 것이란 언론 보도는 설득력이 있는 얘기다”고만 말했다.

▼왜 공개 안했나▼

합의서를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현대측 관계자는 “합의서 체결 직후 이를 곧바로 공개하려 했으나 정부가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에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싸고 뒷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측에서는 합의서 공개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남북경협에 주안점을 둔 합의서가 공개될 경우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희석되기 때문에 정부측이 공개를 막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현대 관계자는 “대북사업은 당국간 합의가 없으면 민간이 추진할 수 없는 점도 문제가 됐고, 대북사업을 노려온 일본 등 다른 경쟁국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북측이 비공개를 원했다”고 다르게 설명했다.

▼승인 왜 못받았나▼

현대측이 북측과 합의한 7대사업 가운데 현재까지 정부당국의 승인을 받은 것은 없다. 7대사업이 아닌, 개성공단 조성사업과 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사업만 정부당국의 승인을 받았을 뿐이다.

현대측은 7대 사업을 공식화하기 위해 합의서 체결 후 몇 차례 승인신청을 했으나 구체적인 사업추진 방법과 실현 가능성 등 실무적인 이유로 매번 반려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측은 현대가 합의했다는 7대 사업은 그 이후 구체적인 진전이 없었고, 현대측으로부터 승인 요청 자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상반된 해명을 내놨다.

통일부 관계자는 “현대측은 이를 합의서라고 부르지만 합의서 내용에 ‘양측 당국의 승인을 받았을 때 발효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는 등 의향서 수준에 불과했다”며 “현대가 이 합의서를 보고했을 때에 통일부에서는 관련 법규와 경제성을 따져보고 추진하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현재 7대 사업 가운데 하나인 경의선 철도연결사업은 현대가 아닌 철도청이 맡아서 하고 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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