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시대]"모든 국민의 심부름꾼 되겠다"

  • 입력 2002년 12월 20일 01시 43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19일 오후 10시20분경 TV에 ‘당선 확정’이라는 자막이 뜬 후 서울 여의도 당사 2층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에 경남 김해시 진영읍 선영 참배를 마친 후 방송사 출구 조사 결과를 보고받자마자 당사 인근 호텔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 본 노 당선자의 얼굴엔 벅찬 자신감과 긴장감이 뒤섞여 있었다.

연이은 유세에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눈가에는 물기도 어려 있었다. 하지만 당직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연호하자 그는 힘있게 주먹을 쥐며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역설했다. 그는 또 “앞으로 저를 지지한 분들만의 대통령이 아닌 반대하신 분들도 포함한 대통령으로서, 심부름꾼으로서 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내용과 준비가 갖추어진 말씀은 20일 다시 드리겠다”며 오후 10시40분경 당사 4층 상황실로 향했다.

김원기(金元基) 정치고문,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 등 핵심 측근은 물론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비롯한 200여명의 당직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허허” 웃기 시작했다. “노무현”을 외치는 구호에, 저녁으로 당사 인근 설렁탕집에서 신계륜(申溪輪) 후보비서실장과 삼겹살에 소주 서너잔을 마신 취기까지 겹친 탓인지 노 당선자의 얼굴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당이 침체해 있다가 선거 막바지에 동참해 주신 당원들의 동지적 연대감을 느낄 때 참 기뻤다”며 “후보가 된 이후에 순탄하게 오지 못하고 혹은 제 탓에, 남의 탓에 우여곡절이 많아서 (여러분들이) 속을 많이 태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노 당선자는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지지 철회’ 선언으로 막을 내린 후보 단일화 과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결과가 이렇게 좋게 됐으니까 지난 일은 옛날 일로 생각하고, 새롭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는 후보 단일화 결단을 내렸을 때 내가 후보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민주당의 전통과 역사를 지켜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노 당선자가 계속 눈물을 머금은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가 단상으로 나와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지금은 별로 할 말이 더 없다. 그냥 지금 너무 좋아서…”라며 말을 맺은 노 당선자는 오후 11시경 선거 운동 과정에서 노사모와 ‘연대 지원’에 나섰던 여의도 개혁국민정당 당사를 방문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당사 앞에 모여든 노사모 회원 등 1000여명의 지지자에 둘러싸여 30여분 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축하한다. 수고 많이 하셨다.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축하 전화를 받은 노 당선자는 연거푸 “네. 잘 알겠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잘 이끌어 달라”며 축하전화를 걸어오자 노 당선자는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나는 절반의 대통령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 후보의 것이다”며 국정운영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노 당선자는 20일 오전 1시경에야 노사모 회원들과 이웃 주민 300여명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 도착, “노무현 대통령”의 연호 속에 당선 첫 밤을 보냈다.

노 당선자는 이날 밤 11시30분경 민주당사 근처에 있는 개혁국민정당 당사에 들러 당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이 자리에서 김원웅(金元雄) 의원은 “개혁정당은 지금까지는 노무현 후보를 지키는 검투사 역할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노 당선자는 “이제 (저에 대한) 검증이 끝났으니까 지켜보지만 마시고 같이 여당 하시죠, 뭐”라고 화답했다. 또 유시민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이제 고생 시작이다”면서 “국회는 여전히 난장판이고 수구당이 남아있다. 2004년에는 국회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20일 0시5분경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 도착해 노사모 회원과 이웃 주민 등 300여명에 둘러싸여 다시 한번 “노무현 대통령” 연호 속에 파묻혔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무슨 일을 먼저 하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선거 기간 중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이제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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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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