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功臣 '노사모'…고비마다 '수호천사' 활약

  • 입력 2002년 12월 20일 00시 14분


민주당 안팎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일등 공신으로 국내 첫 정치인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번 대선 선거 운동 기간에 핵심 연사로 나선 이스트필름 대표 명계남(明桂男)씨나 영화배우 문성근(文盛瑾)씨도 각각 노사모 회장과 고문을 지냈다.

노사모가 결성된 것은 노 당선자가 “지역 감정을 깨겠다”며 15대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 출마한 2000년 4·13총선 직후인 2000년 5월17일 대전의 한 PC방이었다. 당시 노사모 결성을 제의한 이정기씨(35)는 “노 당선자의 낙선을 접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인터넷에서 노무현 지지자들을 규합했다”고 회고했다.

노사모가 본격적으로 노 당선자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은 올 초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 경선 때부터. 노풍(盧風)의 진원지였던 광주에서 그들은 자금이 부족했던 노 당선자에게 지갑을 털어 ‘실탄’을 지원했고, 조직이 부족했던 그의 자원봉사자가 돼 밑바닥을 훑으며 ‘이인제 대선론’을 꺾는 데 기여했다.

이후 정치 활동 참여를 자제하던 노사모는 8·8 재·보선을 계기로 노 당선자가 “영남에서도 경쟁력이 없다”며 흔들릴 때부터 다시 한번 ‘수호 천사’로 나섰다. 노 당선자가 가는 곳마다 지금은 그의 상징이 된 노란 손수건을 내걸었고, 민주당사를 찾아 그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당 지도부에게 노란 장미를 건내며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런 노사모의 활동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 이후 정점에 달했다. 노사모는 거의 모든 선거 유세장을 노란 목도리로 물들였고 선거 막바지에는 정 대표의 팬클럽인 ‘MJ 러브’ 등과 함께 ‘연합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노사모는 “특정 후보 사조직의 선거 운동을 금한다”는 중앙선관위의 해석에 따라 11월25일부터 12월18일까지 인터넷 사이트를 자진 폐쇄했고, 유시민(柳時敏)씨가 이끄는 개혁국민정당의 사무실 등을 불법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한동안 활동이 주춤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팬’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노사모의 활동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유권자들이 정치 혐오를 떨쳐내고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민경배(閔庚培) 사이버문화연구소장은 “노사모는 선진국의 온라인 투표(e-vote)와는 달리 유권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결성해 일종의 파워 집단으로 성장함으로써 새로운 국민 참여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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