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합동토론]李 "도청 횡행이 본질" 盧 "입수경위 밝혀야"

  • 입력 2002년 12월 4일 00시 24분


▼국정원 도청의혹▼

한나라당이 폭로한 국가정보원의 도청 의혹과 관련, 이회창 후보는 “이런 것이 횡행한다면 이건 국가가 아니다”며 강하게 비판한 데 반해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이 내놓은 자료는) 공작기관 전문가들이 만든 자료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세 후보가 서로 정치적 공방을 자제하며 이 문제를 갖고 논쟁을 이어가는 것은 삼갔다.

먼저 발언에 나선 노 후보는 “나를 돕는 사람들도 도청당했기 때문에 나도 피해자인데, 피해자를 공격하는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는 의아스럽다”며 “한나라당은 엄청난 범죄에 대해 혼자서 자료를 쥐고 앉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대통령은 수사를 지시하라”고 촉구했다. 노 후보는 국정원에 대해서도 “진위를 밝힐 능력도 없다면 이게 뭐하는 정보기관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도청이란 국가 정보기관이 국민의 정보를 엿듣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은 정보기관이 불법으로 도청해왔다는 것이다”며 정치공세라는 노 후보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검찰이 제대로 조사한다면 한나라당은 제보자에 관한 것도 분명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 후보는 “한나라당에는 공작정치 전문가들이 있고, 공작기관 퇴직자와 연결돼 만든 자료로 국민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도청자료가 국정원이 만든 게 아님을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이 후보는 도청자료를 입수한 경위를 정확히 밝혀야 하고, 노 후보는 (도청이) 사실이라면 후보 자격이 상실되는 것이다”며 두 후보를 동시에 겨냥했다.

이에 이 후보는 “자료 입수경위를 밝히라는 것은 (도청 의혹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을 문제삼는 것으로, 본말을 거꾸로 보는 것이다”며 선(先) 진상규명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SOFA-한미관계▼

세 후보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거세진 반미 여론을 의식한 듯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한미 SOFA가 미일, 미독 SOFA에 비해 불균형적이다. 국익과 국민의 안전이라는 외교목표에 따라 상대국에 관계없이 따올 건 당당하게 따오겠다”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 국민에게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한국을 방문한 미국 관리에게 분명히 사과를 요구한 적이 있다. 또 SOFA 개정 결의안을 발의한 의원 34명 중 27명이 민주당 의원이다”며 민주당이 SOFA 개정을 주도하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SOFA 개정은 △형사재판권 △민간청구권 △환경보호권 문제를 해결하고, 특별협정을 체결해 한국의 미군 방위비 부담을 줄여야 하며 나아가 한미상호방위조약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 후보는 한미 관계의 현상과 원인을 진단하면서 신경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권 후보는 “민노당이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받기 위한 전국 서명운동을 벌일 때 두 사람은 침묵했고 민노당을 과격한 반미세력으로 몰았다”며 이, 노 후보를 동시에 공격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침묵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나는 SOFA는 반드시 개정해야 하고 부시 대통령이 간접 사과가 아닌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맞받았다.

노 후보는 “한미 관계가 잘못된 것은 과거 우리 외교가 대미 추종외교, 비판 없는 외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며 “2000년 노근리 사건으로 SOFA 개정 얘기가 나왔을 때 이 후보가 반미정서를 걱정했는데 그런 것도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라며 이 후보를 겨냥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치열한 공방전▼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일 TV토론에서 시종 물고 물리는 공방을 벌였다.

이 후보는 민주당 노 후보를 겨냥해 “과연 새 정치를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며 △노무현-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간 후보단일화의 문제점 △권력형비리에 대한 침묵 △잦은 말 바꾸기 등을 문제삼았다.

후보 단일화와 관련, 이 후보는 “노 후보와 정몽준씨는 대북지원, 의약분업, 고교평준화 등 중요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성향이 다른 정씨와 어떻게 정책공조 단일화를 이뤄내겠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는 이어 부정부패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아들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렀을 때 노 후보는 무엇을 했느냐”며 “특검제도 반대하고 민주당 정풍운동 때도 반대해놓고 동교동계 비호를 받아 장관과 대통령후보까지 된 사람이 어떻게 신장 개업한 신임 사장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라고 공격했다.

이 후보는 또 “노 후보의 대북정책이 일관되지 않다.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했다가 나중엔 아니라고 말을 바꾸었다”며 “노 후보의 신념이 바뀐 것인지 묻고 싶다”고 날을 세웠다.

노 후보는 한나라당 이 후보를 향해 “일간지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의 정치가 3김(金)정치와 같거나 더하다는 의견이 66%에 달했다”며 3김식 정치의 예로 1인 지배의 제왕적 행태, 지역주의, 이 후보의 부정부패 연루혐의 등을 들어 집중공세를 폈다.

노 후보는 “이 후보의 동생과 측근인 서상목(徐相穆) 전 의원이 (비리 연루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부인이 (기업에서) 수표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서 전 의원의 경우 재판 출석을 막기 위해 방탄국회를 연 것은 물론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뒤 끌어안고 기뻐하기까지 했으면서 남의 부패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는 또 “이처럼 이 후보 본인과 주변 사람이 이런저런 의혹을 받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어 국회에서 야당이 조사하자고 하면 부패가 청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후보는 이어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이 안기부 예산 1200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썼을 때 이 후보는 선대위 의장이었는데 뭘 했느냐. 김현철(金賢哲)씨의 비리가 있을 때는 뭘 했느냐. 남을 나무랄 형편이 못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주노동당 권 후보는 부정부패와 지역주의,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 등을 놓고 이, 노 후보를 싸잡아 공격했다.

권 후보는 부패문제에 대해선 “한나라당은 ‘부패원조당’이고 민주당은 ‘부패신장개업당’이다”고 공격했고 지역주의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식으론 지역주의를 청산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영남과 고리를 끊고 민주당은 호남과 고리를 끊는 것이 핵심이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과 관련해 그는 “민주노동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전국적 서명운동을 했을 때 이, 노 후보는 모두 침묵했다”고 공박했다.

권 후보의 부패문제에 대한 공세에 이 후보는 “오해받는 부분은 죄송하지만 현 정권의 권력부패는 다른 정권과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했고 노 후보는 “민주당을 신장개업부패당이라고 했는데 국민께 송구스럽게 됐다. 이제 폐업하기로 하고 사장도 바꾸고 새로 깨끗한 영업을 하겠다”고 해명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비리척결 해법▼

세 후보는 정치개혁과 부정부패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인 점을 의식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을 벌였다.

먼저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겨냥해 “100명이나 되는 당원들이 대통령후보를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영접하는데 대권과 당권 분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추궁했다. 이에 이 후보는 “언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한 뒤 “민주당은 계파 때문에 문제지만 우리 당은 집단지도체제와 상향식 공천제로 바꿨다”고 노 후보에게 화살을 돌렸다.

노 후보는 “민주당은 국민경선제라는 초유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냈고, 대선 운동도 국민모금으로 하고 있다”며 “한나라당 같은 보수 정당에 계파가 없다는 것은 이 후보가 1인 독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해법은 후보들간에 미묘한 온도차가 드러났다.

권 후보가 김현철(金賢哲) 김홍업(金弘業) 등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거론하며 “부정재산은 몰수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이 후보는 “몰수하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먼저 어떻게 부정부패를 제도적으로 막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피해 갔다. 노 후보는 “과거에 일어난 부정재산까지 모두 몰수하는 것은 혼란스러우므로 앞으로 일어나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몰수해야 한다”며 부분적으로 동조했다.

한편 노 후보가 “이 후보는 여러 의혹들이 많은 사람이어서 대통령이 되더라도 의혹에 시달리게 된다”고 공격하자 이 후보는 “5년 동안 이 정권이 온갖 의혹을 다 들먹이면서 나를 공격했지만 드러난 게 뭐가 있느냐. 재판받아 무죄가 나왔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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