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의주 경제특구 실험 下]화교자본 겨냥 양빈 깜짝발탁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34분


북한이 신의주 경제특구 초대 행정장관에 네덜란드국적의 화교 양빈(楊斌·39) 어우야(歐亞) 그룹회장을 내정한 것은 이번의 경제특구개발 구상이 기존의 계획경제는 물론 7월부터 추진중인 신(新)경제개혁조치와도 확연히 다른 ‘실험’이라는 점을 증명해주고 있다.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웠던 북한이 언뜻 ‘조차(租借·특별한 합의에 따라 영토의 일부를 다른 나라에 대여하는 일)’로까지 보일 수 있는 특구 기본법과 외국인 장관을 선택한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발상의 전환이다. 양 회장을 선택한 것은 적어도 신의주 경제특구 내에서는 완벽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운영해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대외에 강력하게 표명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외국기업들이 아직은 개방의지를 의심하고 있는 만큼 외국인 장관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활용해 처음부터 개방 의사를 분명히 과시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외국기업의 투자 및 자본 유치가 활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싣는 순서▼

- <上>北 홍콩 벤치마킹
- <中>개발물결 '특구 울타리'넘을까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체제안정과 경제회생이라는 체제유지의 두 축 가운데 지금은 경제회생에 무게를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이 화교 기업인을 선택한 것은 신의주 경제특구의 활로를 ‘화교자본 유치’에서 찾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중국도 개혁개방 초기 화교자본 유치에 전력을 쏟았다. 중국이 설치한 4대 경제특구가 모두 화교자본이 몰려 있는 홍콩(선전 특구) 마카오(주하이〃) 대만(산터우, 샤먼〃)과 가까운 곳이었다.

중국이 개혁 개방에 나선 지난 20년간 연평균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해온 데는 화교자본의 투자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개혁 개방 이래 상하이(上海)에 유치된 외자의 70%가 화교자본이었다. 상하이 내 각 화교단체가 운영하는 기업만도 100개가 넘는다.

대만과 홍콩을 합친 전세계 화교는 6000만명.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전세계 화교가 보유한 자금 규모(대만 홍콩 제외)는 2000억∼3000억달러.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중국 화교 86%가 모여 사는 동남아지역에서는 화교들이 이 지역 상권의 50∼80%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화교들은 세탁소 잡화점 등 전통업종에서 벗어나 정보통신 정밀기기 등 첨단기술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은 매년 화상(華商)대회를 개최해 화교기업의 중국진출과 중국의 해외진출을 도모하고 있을 정도다.

북한이 양 회장을 초대 행정장관에 내정하고 그에게 전권을 맡긴 것은 이 같은 화교 네트워크를 가동, 신의주 경제특구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네덜란드 화교로 유럽연합(EU) 시민권까지 갖고 있는 양 회장을 통해 유럽 화교들의 자본을 유치하는데도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직하다.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북한의 파격적인 변신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북한의 경제개혁 움직임이 미리 계획된 마스터플랜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의주 경제특구 실험의 성공여부에 따라 북한 사회 전체로 경제개혁 움직임이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파격적인 경제개혁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이종환기자 ljhzip@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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