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남북행사 참석여부 논란

  • 입력 2002년 9월 5일 17시 33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두 손 들어 환영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이달부터 봇물처럼 터질 남북간 접촉 행사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가 5일 던진 말이다. 남북 관계의 진전이란 명분을 마냥 거부할 수는 없지만, 대선 정국의 반전을 노린 여권의 노림수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이날 남북 통일축구 환영만찬에 불참하고, 7일 축구 경기에도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서 대표가 참가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긴급한 수해현장 방문 일정 등이 빡빡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잇달아 열리는 남북접촉 행사의 추진 배경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남북 통일축구에 이어 29일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도 한나라당으로선 껄끄러운 대목이 있다.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이 최근 선수단 입장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는 데 대해 반대했다가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이 "당론이 아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선 데서도 당내의 복잡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또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28일경 서울에 도착, 29일 부산 개막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 당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중"이라고 말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아직 세우지 못한 듯 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북한 개성공단 건설과 경의선 연결 등은 실질적으로 차기 정권에서 돈을 들여 할 일인데도 현 정부가 무조건 벌이고 보자는 생색내기에 치중하고 있다"며 "숨돌릴 틈없이 짜여진 남북관계 이벤트도 대선을 겨냥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남북관계의 이같은 복잡성을 감안, 남북행사엔 선별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사안별로 손 들어줄 것은 들어주되, 대다수 국민 여론을 도외시한 '전시성' 행사가 계속될 경우 반드시 짚고 넘어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색이 짙은 당 사정상 순발력있는 대응이 이뤄질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솔직한 고민이다. 개혁성향의 한 의원은 "당의 입장이 자칫 무조건적 반대로 비쳐질 경우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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