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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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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 고위 관계자는 이날 “양측 연락관 접촉과정에서 우리측이 다음달 13일 5차 이산가족상봉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며 “북측은 추석 이전에 실시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미리 날짜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적은 24일 북측 장재언(張在彦) 적십자회 중앙위원장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4차 적십자회담 남측대표단의 명단을 통보했다. 남측 대표단은 수석대표인 한적 서 총재를 비롯해 이병웅 총재 특별보좌역, 김경웅 송우섭 남북교류 전문위원, 민병대 남북교류국장 등 5명, 지원인원 17명과 취재기자 10명 등 총 32명으로 구성됐다.
이에 앞서 남북은 5차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을 24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교환한 뒤 공개했다. 한적과 정부는 남측 가족들을 대상으로 상봉의사 확인작업에 들어갔으며, 남북은 9월 5일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 회보서를 교환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컴퓨터 추첨을 통해 선발된 후보자 200명의 명단을 북측에 전달했고, 북한 적십자회측은 2, 3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시 생사가 확인됐지만 최종방문단에는 포함되지 않은 탈락자 가운데 120명의 명단을 통보했다.
북측이 후보자 200명을 채우지 못하고, 그것도 2, 3차 이산가족 상봉과정에서 남측가족의 생사가 확인된 120명의 명단만을 보냈다는 점에서 북측이 추가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여력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북측 후보자 가운데 최고령자인 이규염씨(82)는 남측의 딸 진옥(59) 진금씨(53)를 만날 것을 희망했다. 또 3차 후보자 명단에 포함됐다가 탈락한 국군출신의 이기탁씨(74)와 손윤묘씨(68)를 비롯해 서울교향악단에서 활동했던 신명균씨(71) 등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이 보내온 명단에는 과거와는 달리 유명인사들이 그리 많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북측 후보자 가운데에는 북한의 영재학교인 평양제1고등중학교 배재인 교장(66), 최고인민회의 1기 대의원인 하영순씨(73·여) 등이 들어 있다.
북측 후보자는 연령별로 60대 47명, 70대 69명, 80대 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남측의 경우 60대 31명, 70대 89명, 80대 80명 등 상대적으로 고령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휠체어 타고라도 50년 恨 풀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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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만나는 윤숙자씨=“휠체어에 의지해서라도 생전에 꼭 한번은 봐야지요.”
5차 이산가족 상봉 후보 명단에 남동생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은 윤숙자씨(79·서울 강서구 가양동·사진)는 “죽기 전에 봐야 하는데…”라고 되뇌며 말을 잇지 못했다.
5남매 중 외아들인 동생 윤희상씨(69)는 50여년 전 인천 숭의고 3학년 때 친구를 만나러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맏딸로 태어나 출가를 한 뒤에도 친정 근처에 살면서 10세나 어린 동생을 어머니처럼 돌봐온 윤숙자씨. 일찍 아버지를 여읜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를 잘해 대학 진학의 꿈에 부풀어 있던 동생의 실종은 그녀에겐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 동생이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북한의 이산가족이 할머니를 찾는다며 전해준 서류뭉치에서 동생의 얼굴을 발견한 것. 50여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다된 동생이었지만 윤숙자씨는 한눈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번 이산가족 상봉 당시 막판에 명단에서 빠졌을 때 몹시 서운했다는 윤숙자씨는 이번엔 50년의 한을 풀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30년 제사 올렸는데 살아계시다니…”▼
◆팔순 아버지 만나는 이진옥씨=“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만 알고 30년 동안 제사를 올렸는데 살아 계시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5차 이산가족상봉 북측 후보 명단에 최고령자로 아버지 이규염씨(82)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진옥(李珍玉·59·여·충북 청주시)씨.
그는 “하루빨리 아버지 품에 안겨 목놓아 울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아버님을 뵈면 어머니와 막내 동생이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걸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진옥씨가 아버지와 헤어진 것은 8세 때. 아버지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는 얘기만 듣고 할머니와 어머니, 두 동생의 손을 잡고 고향인 경기 여주를 등진 채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 당시 너무 어려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나와 여동생 진금이, 남동생 진봉이에게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주시던 모습은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요.”
이진옥씨는 전쟁이 끝난 뒤 서울과 경기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던 어머니 김민희씨(94년 작고) 등 가족과 함께 살다 70년 결혼하면서 충북 청주에 정착해 지금까지 닭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신혼의 모습 간직하고 52년간 수절” ▼
◆남편만날 꿈에 부푼 김기연씨=“꿈에도 그리던 얼굴을 보게 된다니 잠이 오지 않아요.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5차 이산가족 상봉 북측 후보자 120명의 명단에 포함된 이진우씨(77)의 부인 김기연(金基軟·76·경북 포항시)씨는 52년 전에 헤어진 남편을 만난다는 생각에 요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잦다.
김씨는 1차 상봉 때 북에 다녀온 사람을 통해 남편의 생존 사실을 확인하고, 이후 대한적십자사에 수 차례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이 때문에 김씨는 혹시 이번에도 남편을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으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남편과 헤어진 것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8월. 당시 24세로 아직 신혼이었던 김씨는 볼일을 보러 아침에 집을 나간 남편이 동네 청년들과 함께 일꾼으로 동원돼 북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더 이상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김씨는 한 살과 세 살짜리 두 아들을 남겨둔 남편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두 아들을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
포항〓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