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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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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 대응에만 급급하다〓병풍 공방이 시작된 이후 한나라당 지도부는 온통 이 문제에 매달려 ‘투쟁’을 외치고 있다. 23일에는 당 소속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가두시위를 벌일 정도로 강경 기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당 지도부는 현재와 같은 ‘전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설명하지만, 과반의석을 가진 책임정당으로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책 대안 제시나 민주당의 신당 움직임에 대한 대비 등 ‘장기 전략’ 준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는 인상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차분하게 향후 국정운영이나 원내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필요하면 다른 당 의원을 만나 설득하는 일 등이다”며 “그러나 지금 당내에는 한건주의식 강경 발언에 치중하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현안 대처 회의에 쫓아다니느라 장기과제를 검토할 시간이 없다. 요즘엔 하루에 7차례나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내부적으로는 집권에 대한 기대감이 앞서 벌써부터 감투싸움이 한창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관계자는 “모 의원이 차기 국가정보원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등의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혼선〓한나라당 내에서는 크고 작은 혼선과 갈등이 적지 않게 빚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장대환(張大煥) 국무총리서리 인사청문회 구성 과정에서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의 간사 선임을 별다른 이의 없이 수용했다가 내부 반발에 부닥쳐 뒤늦게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설 의원이 간사로 선임된 데 대해 당내에서는 “윤여준(尹汝雋) 의원의 20만달러 수수설을 무책임하게 폭로했던 당사자가 어떻게 청문회 간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는 비판론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이 ‘96년 국가안전기획부 자금 총선자금 유입사건’과 관련,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이 이 사건 변호인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국회 정보위원 보임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는 평가다.
당 지도부는 지난주 초 “23일까지는 단독으로라도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 구성을 강행하겠다”고 다짐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총무단은 “민주당측이 총무 접촉 자체를 회피하는 등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과반의석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되는 일이 없다”며 “상대방만 탓할 것이 아니라 당의 의지를 실행할 수 있도록 정교한 ‘액션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력가동이 안 된다〓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의원의 병풍 쟁점화 요청 발언 다음날인 22일 긴급 소집된 한나라당 의원 총회에는 소속 의원 139명 중 60여명만이 참석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병풍 수사 등과 관련해 민주당과 검찰 등을 공박하는 기자회견이 매일 몇 차례씩 열리지만, 이 자리에 나오는 의원들은 ‘김대업 정치공작진상조사단’의 이재오(李在五) 홍준표 정형근(鄭亨根) 의원 등에 불과하다. 당내에는 ‘DJ일가부패청산특위’ 등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특위가 여러 개 구성돼 있지만 대부분 활동이 부진하다.
한편에서는 “원내 투쟁방법도 있는데 굳이 가두시위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당 고위관계자는 “지금 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다. 적극적인 참여의지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며 “의원들이 기본적으로 싸움판에 끼어들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