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8·15남북행사 워커힐호텔로 제한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36분


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서울에서 열리는 8·15 민족통일대회(14∼17일)의 장소를 워커힐호텔로, 남북참가단 규모는 500명으로 제한했다.

정부가 남북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의 장소나 규모 등 구체적 부분까지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가능한 한 ‘남남(南南)갈등’의 불씨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주최측인 ‘2002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는 당초 15일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본행사 개막식을 갖고, 같은 날 서초구 반포동 조달청 문화원에서 공동미술사진전을 연다는 계획이었다. 전체 참가인원도 최대 6000여명까지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가 이처럼 ‘축소 가이드라인’까지 정한 것은 보수단체들의 잇따른 시위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8·15 행사 직후처럼 통일연대측과 재향군인회(향군) 간에 물리적 충돌은 피하자는 것이다. 장소를 워커힐호텔로 정한 것은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걱정스럽기는 추진본부측도 마찬가지. 김종수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과 조성우 민화협 상임의장은 8일 향군 본부로 찾아가 이상훈(李相薰) 회장 등 임원진에게 “반대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향군측은 12일 “서울 한복판에서 평양 축전이 재연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냈다. 정해진 곳에서만 행사를 치른다면 ‘묵인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통일연대도 10일 성명을 내고 “8·15 대회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대회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남북 대표단과 참관단이 대회를 진행하는 동안 건국대에서 차분하게 지켜보고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행사가 끝나고 북측 대표단이 돌아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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