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아들 문제'만이 아닙니다

  • 입력 2002년 7월 14일 19시 06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재임 중에 두 아들이 구속되는 참담한 시련을 겪고 있다. 인간적으로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김 대통령은 왜 자신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들들의 범죄와 비리의 본질을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셋째아들 홍걸(弘傑)씨에 이어 둘째아들 홍업(弘業)씨마저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난달 21일 저녁.

아들들의 비리에 대해 김 대통령은 처음으로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왔으며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식 문제에 대한 대통령 아버지로서의 사과였다.

그러나 10일 검찰이 홍업씨를 기소하며 발표한 범죄 혐의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사건의 본질은 결코 ‘대통령 아들의 범죄’나 ‘대통령 가족의 비극’이라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본질은 김 대통령이 발탁하고 등용해 총애한 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대통령 아들이 저지른 범죄에 ‘공범’ 또는 ‘방조자’로 가담한 권력형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김 대통령의 지시로 언론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워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하고 자신의 비리 때문에 해외로 도망간 안정남(安正男) 전 국세청장.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며 검찰총장을 지낸 신승남(愼承男)씨.

파산한 은행 이사 출신으로 예금보험공사 전무라는 요직을 차지한 김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李亨澤)씨. 평생을 김 대통령의 집사로 살아온 이수동(李守東)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

비리 정보를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용돈까지 대준 전 현직 국가정보원장들.

이 정도로 많은 ‘대통령의 사람들’이 관련됐으니 홍업씨는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범죄와 비리를 저질렀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내각책임제 국가는 물론이고 대통령중심제 국가라도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정권이 책임져야 할 사건이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이 ‘자식 관리 잘못’ 때문에 생긴 일 정도로 인식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 대통령은 자식뿐만 아니라 측근들도 잘못 관리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사 정책 실패가 위기의 원인이었음을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4강 신화가 이뤄지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히딩크 교훈’을 배우자고 야단이다.

그러나 대통령 아들들의 범죄는 냉정하게 말하면 ‘반(反)히딩크식 인사’가 그 원인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성공이 남긴 교훈의 핵심은 ‘지연 학연 혈연을 배제한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아들이 주범인 범죄의 공범자와 방조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과연 현 정권과의 지연 학연 혈연 때문이 아니라 능력만으로 그 위치에 간 사람들인가.

사건의 본질을 모르면 교훈을 얻을 수 없다. 대통령이 아들 둘을 감옥에 보내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번 개각에서도 입증된 셈이다. 여전히 전문성과 능력이 기준이었다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요직에 기용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아들들의 범죄에 대한 사과를 온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 열기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슬그머니 ‘3분 스피치’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사건의 본질에 관해 진심으로 다시 사과해야 옳다.

권순택 사회1부장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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