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내분 악화일로/7大쟁점 점검]음모론… 黨 깨지나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16분



민주당의 ‘혼돈’이 심화되고 있다. 각 정파와 대선 예비주자들의 이해가 엇물린 톱니바퀴처럼 부딪히면서 금속성 소음만 내고 있다. 당장 당 지도부가 사실상 공백 상태가 돼버렸는데도 향후 당 지도체제 문제는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전당대회 문제는 더 복잡하다. 쇄신파가 1월 전당대회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 측은 후보 조기 가시화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어느 쪽을 봐도 대화와 타협, 조정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음모론’과 ‘역음모론’까지 제기되면서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당이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마땅한 중재자도 없다. 각 정파가 서로 불신의 눈으로 상대방을 경계하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귀국 이후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1. 지도부공백 발등의 불

최고위원 일괄사퇴로 당장 지도체제를 어떻게 정비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민주당 전용학(田溶鶴) 대변인은 4일 “제발 공백, 진공, 마비라는 표현은 삼가달라”며 “한광옥(韓光玉) 대표를 중심으로 집행부가 정상적으로 당무에 임해 당이 조기에 정상화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현재 과도체제 수립방안으로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서너 가지 형태. △대표 최고위원만 지명하고 주요 당직자를 교체해 비상체제로 운영하는 방안 △임명직 최고위원 5명을 다시 지명하는 방안 △전당대회 권한을 위임받은 당무위원 회의에서 다시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어떻게 가닥이 잡힐지는 오리무중이다.

한 대표 체제에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쇄신파의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전당대회 개최를 비롯한 굵직한 정치 일정이 정리되지 않는 한 당은 당분간 ‘과도체제’로 운영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7일 최고위원회의 해법 찾을까

청와대 최고위원회의가 3일에서 7일로 연기된 것은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최고위원회의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광옥(韓光玉) 대표가 3일 이 최고위원을 별도로 만나 최고위원 일괄사퇴 과정을 설명한 뒤 7일 최고위원회의 참석을 종용했지만 이 최고위원은 계속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최고위원회의가 열린다고 해서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묘안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당 지도부나 청와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귀국 후 어떤 카드를 꺼낼 것인지도 오리무중이다. 일단 최고위원 및 의원들을 상대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겠지만 마냥 시간만 끌기에는 당내 사정이 녹록치 않다. 김 대통령은 우선 당 지도부의 공백부터 메우고 당정 쇄신안을 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현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김 대통령이 마음을 비운 것 같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이 뭔가 중대한 결단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당정쇄신 언제 얼마나

당정 쇄신과 관련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당초 ‘11월 민주당 개편, 12월 내각과 청와대 개편’의 2단계 개편안을 준비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내분이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화되면서 그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또한 쇄신 폭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우선 당의 경우 한광옥(韓光玉) 대표를 중심으로 한 현 지도부가 권력투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형국이다. 쇄신파의 요구가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이나 박지원(朴智元)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차원을 넘어 한 대표 체제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 대통령도 답변을 피해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권 전 최고위원이나 박 수석의 거취는 김 대통령이 그리는 개편의 큰 틀 속에서 함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한동(李漢東) 총리를 중심으로 한 내각 개편은 정기국회가 끝난 뒤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각료들의 동요를 우려해 개각 시기와 폭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교체론이 일고 있는 경제팀을 포함한 대폭 개각이 점쳐진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1월 全大-4월 全大 대립

전당대회 개최 시기는 대선 후보를 언제 뽑을 것인지, 후보와 총재를 분리할 것인지 등 향후 권력구도와 밀접히 연결되는 첨예한 사안이다.

최고위원 일괄사퇴 이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1월 전당대회론’의 핵심은 당헌에 규정된 대로 1월에 전당대회를 개최해 ‘실세 대표’를 뽑고 대선 후보를 결정짓는 전당대회는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자는 것.

1월 전대론은 주로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 진영이 주장하고 있으며, 쇄신파의 주장과 맥이 통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쇄신파 내에서도 한 최고위원을 염두에 두고 ‘실세대표론’을 주장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젊은 대표론’을 주장하면서 쇄신파들이 직접 당권을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어 사정이 꽤 복잡하다. 반면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 진영에서는 지방선거 전에 빨리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당정쇄신도 좋지만 본선이 중요하므로 3, 4월 전당대회에서 후보를 가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최고위원도 3, 4월 전당대회에서 후보를 결정하자는 쪽이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음모론-逆음모론 공방

이인제 최고위원의 측근들이 2일 “최고위원 일괄 사퇴 과정에 청와대와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 사이에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제기한 음모론의 요지는 ‘모두 합세해 이 최고위원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내년 1월 전당대회를 열어 쇄신파 의원 중에서 한 최고위원 쪽에 유리한 대표를 뽑고 대선 후보는 지방선거 이후에 뽑는다는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4일에는 이 최고위원 진영의 분위기가 약간 달라졌다. 한 참모는 “일부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지만 구체적인 음모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 최고위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에 대해 한 최고위원의 한 참모는 오히려 “(이 최고위원이) 쇄신론 공세를 피해가며 현 체제를 유지한 뒤 바로 후보 조기 가시화로 가기 위한 수순이 아니겠느냐”며 ‘역(逆) 음모론’을 제기했다. 노무현 최고위원도 “걸핏하면 음모라고 하는데 음모는 무슨 음모냐”고 반박했다.‘음모론’ 공방이 여권 내부가 향후 당권 및 대권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쟁투(爭鬪)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흔들림없는 쇄신파

민주당 쇄신파 의원들은 최고위원 일괄사퇴가 당정쇄신의 물길을 바꾸지 않을까 경계하면서 ‘선(先) 인적쇄신’ 입장을 한층 명확히 하고 있다.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4일 “쇄신을 먼저 하고 나서 당 체제 정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다”고 단언했다.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소장 의원들 간에도 주장이 엇갈렸던 5월 정풍운동 때와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대통령도 잘 알 것”이라며 “대통령이 쇄신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총재로서의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쇄신파 의원들이 최고위원 일괄사퇴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자칫 쇄신 흐름이 지도체제 논쟁에 묻힐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당내 의원들을 상대로 한 서명작업 등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할지 여부는 7일의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지켜본 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 5개 개혁모임은 5일 오전 대표자회의를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동교동계 분열 가속

민주당 최대 계파인 동교동계가 10·25 재·보선 이후 당정쇄신 파동을 거치면서 급속히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쇄신파 의원들이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의 정계은퇴를 명시적으로 요구했지만 이에 강력 반발한 동교동계는 김옥두(金玉斗) 이훈평(李訓平) 의원 등 소수에 불과했다.

안동선(安東善) 이윤수(李允洙) 의원 등은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에 대해 비판적인 뜻을 밝히기도 했다. 권 전 최고위원이 타깃이 됐던 5월 정풍운동 당시 범동교동계가 벌떼처럼 일어나 방어막을 쳤던 것과는 딴 판이다.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은 9월 당정개편 과정에서 홀로서기를 천명하면서 권 전 최고위원측과 갈라선 데 이어, 이번에는 적극적인 쇄신론을 펴면서 한광옥(韓光玉) 대표와도 확실히 거리를 뒀다.

동교동계 3대 축인 권 전 최고위원, 한 최고위원, 한 대표가 모두 제 갈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권 전 최고위원측과 연대를 통해 대표직에 오른 한 대표는 양측이 공동보조를 취하는 데 실패하면서 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사면초가에 놓이게 됐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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