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쿠릴 꽁치분쟁]러에 속고…일본에 차이고

  • 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53분


▼해양부 늑장 대응▼

러시아와 일본이 남쿠릴열도 주변 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금지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관련어민 피해는 물론 꽁치수급 차질과 가격상승 등 파장이 클 전망이다.

한국 꽁치 수급량(약 4만5000t)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남쿠릴어장을 대신할 ‘대체어장’확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꽁치분쟁’ 과정에서 보여준 해양수산부의 미숙한 대응에 대한 비판여론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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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도 ‘대체어장’도 없다〓러일 양국이 9일 차관급회담에서 ‘제3국 어선의 조업금지’에 기본적으로 합의했다는 일본언론 보도가 나온 10일에도 해양수산부는 이렇다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해양부 당국자는 “남쿠릴열도 수역에서 조업이 금지될 경우 일본 산리쿠(三陸)수역에서의 조업을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마저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및 러시아 측과의 협상에 내놓을 전략자체가 마땅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어민들의 표를 의식하는 일본 집권 자민당은 남쿠릴수역은 물론 산리쿠수역에서의 ‘양보’에도 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일본은 현재 한국 어선들에 산리쿠수역에서의 조업허가장을 계속 내주지 않아 우리 어선의 조업이 중단된 실정이다.

▽해양부의 어설픈 대응〓해양부는 러일 양국이 남쿠릴열도에서 제3국 조업 금지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한달 전 어느 정도 눈치챘으나 차일피일 미루는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해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9일까지도 해양부 당국자는 “러일 두 나라가 한국어선의 남쿠릴수역 조업금지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말해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협상흐름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삼남(柳三男) 해양부 장관은 취임한 지 불과 한달도 안 돼 업무파악이 부족한 가운데 이번 사태를 맞았다. 또 홍승용(洪承湧) 차관은 2010년 세계해양박람회 유치활동을 위해 2일부터 11일까지 중남미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다.

정부는 우리 어선의 남쿠릴 및 산리쿠수역조업이 어려울 경우 일본 측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아직 뚜렷한 방침도 갖고 있지 않다.

▽업체들 줄도산 불가피〓한국원양어업협회 측은 “산리쿠수역의 조업이 불가능해지고 남쿠릴 꽁치어장마저 잃게 되면 꽁치조업 자체가 완전 중단되는 셈”이라며 “근해에서 잡히는 꽁치가 연간 1만5000t에 불과해 꽁치수급은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희섭(朴熙燮) 원양어업협회 꽁치봉수망 분과위원장은 “남쿠릴 꽁치어장을 대체할 만한 어장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꽁치를 잡는 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남쿠릴 꽁치어장을 상실하면 꽁치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수급 차질은 바로 꽁치값 폭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일본이 산리쿠수역 조업을 제한한 99년부터 남쿠릴수역과 인연을 맺었다. 우리 어선들은 99년과 지난해 각각 1만2764t, 1만4440t의 꽁치를 잡았다.

<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외교부 우왕좌왕▼

남쿠릴 수역에서의 제3국 꽁치조업 금지에 일본과 러시아가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10일 전해지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또 정부의 안이한 수산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한 당국자는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로부터도 뒤통수를 맞았다”며 “러시아가 극적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 말해 한일관계 악화는 물론 한-러관계에도 긴장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일본의 총력전과 러시아의 배신(?)〓일본은 8월 1일 한국 어선의 남쿠릴 꽁치조업이 시작되자 한국을 설득하는 대신 모든 외교력을 러시아에 집중했다. 일본은 같은 달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유감을 담은 친서를 러시아측에 전달했다.

바로 다음날인 21일 이고리 파르후트디노프 사할린 주지사는 “남쿠릴 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을 반대한다”며 일측 입장에 동조했고,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부 차관도 “이 문제가 러-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일측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한국 조업 배제’쪽으로 방향이 기울었다. 특히 9일 열린 러-일 차관급 협상에서 일측이 제시한 ‘경제적 대가’가 결정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국측에 10여차례나 “일본이 국내 정치를 의식해 순수 어업문제를 계속 정치 쟁점화한다면 러시아도 강경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이중 외교’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꽁치분쟁과 한일 정상회담〓정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에서 꽁치문제 같은 실무적인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지만 6일 이 문제가 일본 언론을 통해 불거져 나오자 회담 의제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이 국운을 걸고 이 문제에 매달려온 만큼 고이즈미 총리 방한 때 특별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불과 반나절밖에 안 되는 형식적 방한을 하는 데다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신사 참배 파문 등과 관련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을 피할 것으로 알려져 이번 꽁치 분쟁은 한일관계 복원보다는 오히려 악화 쪽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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