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가해자 먼저" "피해자 먼저"

  • 입력 2001년 9월 28일 19시 04분


윤철상 의원
윤철상 의원
28일 국회 문화관광위의 문화관광부 국감에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7명의 증인에 대한 신문이 예정돼 있었다. 증인들은 박지원(朴智元)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이남기(李南基) 공정거래위원장, 손영래(孫永來) 국세청장, 이종찬(李鍾贊) 전 국가정보원장과 동아 조선 국민일보의 대주주 3명이었다.

하지만 증인신문은 처음부터 난항에 부닥쳤다. 언론사 사주들이 ‘건강 및 재판상의 이유’로 불출석함에 따라 나머지 증인 4명에 대한 신문 여부를 놓고 여야가 격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감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문광위원장실에서 만난 박 수석과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 간에 뼈 있는 농담이 오갔다.

‘언론탄압’에 항의하면서 20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던 박 의원이 “단식을 중단했으나 몸무게가 늘지 않고 있다”고 말하자, 박 수석은 “말을 많이 하니까 체중이 늘지 않는 것”이라고 받았다. 또 박 의원이 “오늘은 다 밝혀내겠다”고 전의(戰意)를 불태우자, 박 수석은 “옛날 경험담(YS 때 일)만 얘기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감사에선 언론사 세무조사의 성격에 대한 여야 간의 치열한 논쟁이 재연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언론사 세무조사는 명백한 언론 탄압인 만큼 이를 주도한 정부측 인사에 대한 신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피해자는 증언을 안하는데 어떻게 가해자부터 신문할 수 있느냐”며 “언론사주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해서라도 함께 증인신문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마침내 박 의원이 “언론사에 대한 가해자로 알려진 4명 중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언론 탄압 기획자, 박 수석은 연출자, 국세청장과 공정위원장은 돌격대, 총감독은 대통령”이라며 “언론사주는 가장 큰 피해자”라고 규정하자 여야 간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민주당 윤철상(尹鐵相) 심재권(沈載權) 의원 등은 “우리도 할 얘기 많다” “정치 쇼도 한계가 있지”라고 소리쳤고, 최재승(崔在昇) 위원장도 “그런 소리는 그만 해”라고 박 의원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민주당 의원들은 “증인 7명 중 한 사람이라도 안 나오면 신문을 하지 않기로 여야 간사 간 합의까지 했으면서…”라며 한나라당측을 비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정병국(鄭柄國) 의원은 “증인 7명 중에 4명만 출석했으면 4명에 대해 신문하면 된다”며 “3명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만큼 사유가 정당한지 확인이 필요하며 바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재반박했다.

자민련 정진석(鄭鎭碩) 의원도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대상은 1차적으로 정부 당국”이라며 “언론사와 정부 간 긴장 관계가 언론사태의 발단인 만큼 우선 정부 당국자에 대한 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나라당측을 거들었다.

여야는 오후 들어 각각 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한 뒤 간사회의를 계속했으나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결국 증인신문은 무산됐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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