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대권문건 파문]"李총재 대선후보 결정됐나"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48분


13일 한나라당의 ‘차기대권 문건’ 파문과 관련한 여야의 대응은 신속했다. 한나라당은 불끄기에, 민주당은 불씨 지피기에 진력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지 24시간도 안된 이날 오전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적대적 언론인’에 대한 비리 수집 등 민감한 내용이 담긴 문건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수록 부담만 커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이총재는 총재단회의 석상에서 “지난 세월 야당을 하면서 언론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언론이 담당하고 있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역할과 기능에 신념을 갖고 있다”며 언론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했다.

당직자들도 파문 수습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문건 작성자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기로 방침을 정했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판단에서 14일 발표키로 한 4개 항의 국정쇄신 요구도 앞당겨 내놨다.

하지만 이총재의 유감 표명을 당내 비주류와 여권, 그리고 여론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줄 것인지 우려하는 당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당장 당내 비주류인 김덕룡(金德龍) 박근혜(朴槿惠)의원 등은 “언제 우리 당이 이총재를 대선후보로 결정했느냐”며 “우리 당이 1인이 지배하는 사당화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민주당은 이번 파문을 ‘모처럼의 호재’로 인식한 듯 총공세에 나섰다. 서영훈(徐英勳)대표가 주재한 당4역―상설특위원장 연석회의는 이총재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은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문제의 문건은 이총재가 얼마나 대권욕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추악한 공작문건”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날 공개질의서를 채택한 데 이어 박병석(朴炳錫)대변인과 부대변인단을 총동원해 이총재와 한나라당을 성토하는 성명과 논평을 잇따라 내놓았다.

박대변인은 성명에서 “문건이 작성된 8월 이후 한나라당의 공권력 무력화 기도, 여권 고위인사 비리의혹 제기 등을 보면 한나라당이 문건 내용을 그대로 실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문제의 문건이 ‘실무자의 습작’이 아닌 ‘기획위원회 문건’임을 주장했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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