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銀 편법대출]검찰 '외압설' 수사 "한다" "안한다"

  • 입력 2000년 8월 28일 19시 05분


한빛은행 거액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조사부(부장검사 곽무근·郭茂根)는 28일 이 사건 수사를 서둘러 끝내려던 방침을 바꿔 대출과정에 외압 또는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건축자재 수입업체인 A사 대표 박혜룡씨(47·구속)가 한빛은행측으로부터 구속영장에 적힌 101억원보다 훨씬 많은 300억원 이상을 챙긴 혐의를 포착하고 정확한 대출 액수를 확인하는 한편 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 조사키로 했다.

검찰 수사결과 A사와 함께 불법대출을 받은 S사 대표 민모씨는 대출금 250억원 중 절반 이상을 박씨에게 줬으며 R사 대표 이모씨는 민씨를 통해 대출금 67억원 중 60억원을 박씨에게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검찰이 외압 여부에 대한 수사방침을 밝히기까지 보여준 수사관계자들의 발언과 자세는 이번 수사에 대해 검찰이 적지 않은 부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검찰이 신창섭 전 관악지점장(47)을 구속한 25일 수사간부 A검사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이해가 안될 정도로 시중은행의 일개 지점에서 특정인에게 너무 많은 돈이 대출됐다”며 “대출된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박씨가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의 조카’ 행세를 하고 박씨의 동생이 박장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검찰의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A검사는 26일 “기본적으로 편법대출 등 고발된 내용을 밝히는 데 그칠 것”이라며 외압 여부나 대출금의 사용처는 수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씨의 동생이 최근까지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실에서 근무했던 인물로 알려지는 등 박씨와 정관계 인사의 연루의혹이 짙어진 27일 검찰은 전격적으로 박씨를 구속했다.

이날 오후 B간부는 “박씨를 구속한 것으로 수사는 일단락지어졌다”며 “신씨와 박씨 등에 대한 추가수사 외에 대출금의 사용처는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 B간부는 다시 말을 바꿔 “사실은 대출금의 사용처를 수사중”이라며 “외압이나 청탁에 대한 의혹이 커질까 봐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C간부는 “수사를 더 진행해봐야 사용처를 수사할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고 한 고위 관계자는 “절대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시 28일 오전. B간부는 “외압 등에 대한 구체적 단서가 없는 이상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지검 홍석조(洪錫肇)2차장은 “기다려보면 여러 가지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한 수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대출액이 워낙 잘게 나눠 쓰여져 사용처를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과연 어느 관계자의 말을, 그리고 그 관계자의 어느 시점의 발언을 믿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