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회창총재 방북 초청할수도"

  • 입력 2000년 8월 14일 23시 27분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12일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 오찬을 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초청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이총재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혔으나 사장단의 일원으로부터 “이총재를 초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어제 실언했어도 오늘부터 잘하면 불문에 부친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14일 전했다.

이는 명시적으로 초청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총재의 태도 여부에 따라 초청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이총재가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 인민들의 환영을 두고 ‘파쇼국가의 조직적 환영’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 하면 인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며 “초청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면 안되는데, 초청해도 안 오면 무안만 당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실제 초청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

김위원장은 이어 “(이총재를 초청하더라도) 정당 대표로 할지, 개인 자격으로 할지가 문제이고, 초청자를 우리 야당인 사회민주당으로 할지 노동당으로 해야 할지도 문제된다”며 “사회민주당은 노동당과 연계돼 있어 남쪽 야당과는 다르다”고 말해 이총재 초청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까지 심사숙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김위원장은 “노동당 창건일(10월10일·55주년) 행사는 반세기 이상 집권한 정당으로서는 세계 최초의 행사인데 이번에 남쪽의 성의를 시험해 보려 한다”며 “우리 경사를 대대적으로 축하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 이총재를 초청할 경우 그 시기가 노동당 창건 행사와 관련이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즉각 “이 시험은 너무 야박하기 때문에 꼭 시험을 치를 생각은 없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위원장은 이후에도 다른 주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총재 같은 사람이 많으면 남한에 가기 싫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사장단 관계자는 “김위원장이 사장단의 질문에 의례적 차원에서 대답하는 분위기였다”며 “노동당 창건 행사와 이총재 초청과는 반드시 연결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또 “북한이 이총재를 초청하더라도 노동당 창건일은 아니며, 김위원장 명의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총재비서실장은 “이총재는 여권을 비롯한 어느 누구로부터도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그러한 얘기를 전해들은 바 없다”며 “만약 제의가 있으면 그때 가서 수락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앞서 이총재는 6월19일 기자회견에서 “제1당 총재로서 당과 국익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만날 수 있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도 예외는 아니다”고 밝혔으나, 북한 노동당 행사 등에 여러 정당의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초청되는 것이라면 응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기자>yysl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