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5돌 특집]남북화해 어디까지 왔나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1945년 8·15광복은 ‘미완의 독립’이었다. 해방은 됐지만 동시에 분단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광복’인 통일까지의 새로운 장정을 요구했다.

새 천년 첫해인 2000년 남북은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으로 통일장정에 귀중한 디딤돌을 놓았다. 우리는 어디쯤 온 것일까.

같은 시기에 분단국이 된 동서독은 분단 25년만인 70년 첫 정상회담을 했고 그로부터 20년뒤인 90년 통일을 이루었다. 반면 6·25전쟁이라는 상잔(相殘)의 비극을 겪은 남북은 분단 55년만에야 첫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독일의 ‘통일시간표’를 시금석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이제 반환점은 돈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남북대화만 해도 70년대 이전까지는 이렇다할 것이 없었다. 71년에야 첫 공식대화인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성사됐다. 그리고 이듬해 7·4남북공동성명이 나왔고 적십자 본회담도 시작했다.

대화 분야의 최대 성과라면 91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과 남북정상회담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 둘은 남북관계의 장전(章典)이 되고 있다.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은 분단 40년만인 85년에야 처음 성사됐으나 한동안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재개됐다.

교류와 협력은 대화보다 더욱 더뎠다. 88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이른바 7·7선언을 발표하고 대북경제개방조치를 취한 후에야 간신히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98년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조치로 교류협력은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98년에 시작된 북한과 현대그룹간 금강산관광사업이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경의선 철도 연결 및 개성시 관광 등은 본격적인 교류협력시대를 알리는 이정표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북간 대화와 교류협력의 바탕에 진정한 화해의 정신이 깔려있느냐는 것이다. 정략적이고 단기적이 아닌, 민족적이고 장기적인 접근만이 양측에 도움이 되며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 독일통일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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