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화제]90년 누이 삿포로서 해후 한필성씨

  • 입력 2000년 7월 18일 18시 55분


“저보다 더 급한 이산가족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90년 3월 북한선수단을 이끌고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아시아경기에 참가한 여동생 필화(弼花·59·현 북한 체육성 체육기술 연맹 부위원장)씨를 극적으로 만나 1000만 이산가족의 심금을 울렸던 한필성(韓弼聖·66·경기 파주시 교하면 동패리)씨.

대한적십자사가 선정한 올해 8·15 이산가족 북한방문단 후보명단에서 안타깝게 탈락한 한씨는 18일 “부모님이 살아계신 사실을 확인한 가족도 상당수 탈락했는데 나는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양보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물론 한씨가 일부러 양보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양보하려 했지만 마감 2, 3일을 앞두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신청서를 냈다. 추첨에서 당첨이 안된 것뿐.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이번에야말로 이산가족의 만남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엔 만남이 이뤄질 듯하다 무산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85년 남북합의에 따른 이산가족 고향방문도 일회성 행사로 끝났다.

개인적인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71년 2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로 일본 삿포로(札幌)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필화씨를 만나러 현해탄을 건넜지만 ‘만남의 형식’문제로 남북이 싸우다 결국 전화통화만 하고 만나지 못했다. 90년5월에도 북한측이 초청장을 보내 평양에서의 상봉을 꿈꿨지만 북측이 ‘무사귀환’을 보장하지 않아 끝내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엔 남북정상이 합의한 만큼 비록 순위는 처지더라도 조만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한씨의 기대다. 한씨는 이와 함께 “100명씩의 교환방문으로 물꼬를 텄으니 이제는 120여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1세대들의 방문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고향인 평남 진남포에서 50년 12월 단신 월남한 한씨는 갖은 고생을 다 겪고 다행히 87년 목장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재산을 모았다. 상봉과 교류를 통해 이산가족의 재결합이 가능하다면 북한의 친인척들을 모두 데려와 함께 사는 게 한씨의 마지막 희망.

남으로 내려올 때 북에 남았던 가족 가운데 부모님을 제외하고 필희(弼姬·83), 필녀(弼女·76) 등 누나 2명을 비롯해 필환(弼煥·64), 필옥(弼玉·61·여), 필화 등 5남매가 모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씨는 “90년 상봉을 앞두고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나눠줄 옷가지와 재봉틀, 자전거 등을 마련했었다”며 “이번엔 탈락했지만 빠른 시일 안에 꼭 고향을 방문, 이를 전달하고 부모님 산소를 찾아 불효를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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