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본보 총선자문위원 6人 제안]

  • 입력 2000년 4월 12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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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새 세기 첫 선량(選良)을 뽑는 제16대 총선일이 밝았다. 이번만은 제대로 뽑아보자. 지연 혈연 학연 등에 얽매였던 구태(舊態)를 털어버리고 깨끗하고 능력있는 후보에게 귀중한 한 표를 던져 선거문화를 바꾸고 정치를 바꿔보자. 동아일보 ‘4·13’ 총선자문위원들이 투표일 아침에 유권자들에게 드리는 고언(苦言)들을 모아 보았다. 순서는 가나다 순.》

▼최은순(崔銀純)변호사▼

언론에 보도된 선거운동을 보면 자기가 뭐를 잘해보겠다기보다 남이 뭐를 잘못했다고 말하는 후보가 많은 것 같다. 선거기법 상 그렇게 남 헐뜯는 게 효과적인 선거운동일지 몰라도 일반인 입장에서 보기엔 민망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터무니없는 흑색선전도 많았다고 한다. 상대 정당이나 후보를 일단 흠집낸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모른 척하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선거법은 이를 엄정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와 검 경찰도 이를 적발하느라 애쓰고 있지만, 어디 법이나 단속만으로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결국 유권자 몫이다. 이번 선거만큼은 단점 보다 장점을 보고, 남 욕하는 사람보다 칭찬하는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밝은 마음으로 투표해야 밝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겠는가.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이주향(李柱香·수원대 철학)교수▼

하는 사람은 치열하고 보는 사람은 냉담했던 선거운동이 드디어 끝났다. 그 치열과 냉담 사이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뿌려진 모양이다. 많은 돈을 뿌린 후보는 분명히 국민을 배반할 후보다. 사업해서 번 돈이니 검은 돈이 아니라고, 내 돈 내 맘대로 쓴다고 눈 깜짝 안하는 후보도 있는 모양이다. 세비를 아무리 곱해봐도 나오지 않는 큰돈을 한 순간에 퍼넣을 수 있는 사업가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월하게 돈을 벌기 위해 정치 권력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큰 돈 챙긴 선거브로커들, 돈 받고 다니면서 선거운동하는 일부 부녀회장들, 음식먹고 돈받고 표찍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기막힌 후보들이 한국정치문화의 발목을 잡는 거다. 각종 행사장에 많은 사람을 동원한 후보, 도대체 인건비가 얼마나 들까, 부패의 예감이 분명한 후보들이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

▼함성득(咸成得·고려대)교수▼

오늘 선거에서 누구에서 한 표를 던질까. 오늘의 선택은 금권정치와 지역감정 중심의 낙후된 정치에서 벗어나 정책 중심의 새로운 정치문화 창달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회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시민 단체가 벌인 낙천, 낙선 운동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여야간 IMF위기 책임과 국채규모 등 경제공방을 통한 정책대결이라는 새로운 선거문화의 싹이 트기도 하였다.

그러나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되살아난 지역감정과 금권살포가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유권자는 냉철한 이성으로 돈과 학연 혈연지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만한 정책적 능력을 지닌 정당과 그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신성한 한 표로 조용한 선거문화의 혁명을 이룩하자.

<현기득기자>ratio@donga.com

▼박원순(朴元淳)참여연대사무처장▼

이제 때가 왔다. 온 국민의 분노와 절망만을 가져왔던 정치권에 대한 심판의 날이 왔다. 4년 간 새로 머슴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할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이다. 불만만 잔뜩 가진 유권자보다 행동하는 유권자가 아름다운 순간이다.

도대체 우리가 뽑으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깜깜 무소식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고향이 어디인지, 같은 학교를 나왔는지 등 연고에 따라 투표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후보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민단체들이 내세운 낙선기준과 정보공개, 선관위가 공개한 납세 전과 병역 등의 경력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도토리 키재기’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꼼꼼히만 본다면 그래도 좋은 머슴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깐깐한 유권자의 꼼꼼한 선택만 남았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은희경(殷熙耕)소설가▼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이 창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나 사회현상이 오랜 세월 한 쪽은 ‘오만’으로 대하고 다른 한 쪽은 ‘편견’으로 반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오만도 편견도 근거를 잃어버린 새로운 시대다. 사람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구습이 망령처럼 남아 있다면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직원 한 사람 구하는 일이라면 일 잘하는 사람 제쳐놓고 고향사람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다. 후보가 타지 사람인 것도 아니고 그 후보의 소속 당수가 타지 사람이라고 해서 진정한 일꾼을 버리면 손해는 나에게 돌아온다. 그런 사람은 지역을 위해 일하기 보다 당수에게 충성할 것이다. 애향심을 부추겨서 국회의원 된 사람은 제 자신과 자신을 지켜줄 당수만 사랑할 게 뻔하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허영교수(許營·연세대·법학)▼

대의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시작된다. 선거가 대의민주정치의 질을 좌우한다. 따라서 최선의 선택이든, 차선의 선택이든, 차악(次惡)의 선택이든 투표는 해야 한다. 투표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국민의 축제이어야 할 선거가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정치꾼들만의 타락한 잔치로 끝나게 해서는 안된다.

정치꾼들이 저질정치로 국민의 정치적 혐오감을 조성하고 국민을 선거에서 등돌리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잘 계산된 정치적인 술수인지도 모른다. 이 술수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전례 없이 혼탁해진 선거전이 참으로 짜증스럽게 느껴졌더라도 중간평가든, 인물평가든 각자의 기준에 따라 투표는 해야 한다. 선거일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소식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투표로 평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의 투표로 성장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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