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막판 돈선거 실태/살포조에 돈봉투 분배

  • 입력 2000년 4월 11일 19시 51분


10일 밤 부산의 한 후보의 지구당사에 승합차와 지프, 승용차 등이 속속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한결같이 양복 차림에 휴대전화와 검정 손가방을 든 중년 남성들. 이들이 지구당사의 빈 방에 모두 들어간 뒤 당사 앞에는 건장한 청년들이 포진했다.

선거 막판의 현금 살포전, 이른바 ‘야간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후보의 측근은 “경험상 돈을 뿌린 지역은 개표장에서 표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경부터 은행 서너군데를 돌며 돈을 찾았다. 검정 007 가방 2개에 든 돈은 수천만원은 돼 보였다.

동책 통책 종교단체 및 계모임 담당자 등 이른바 ‘작업반장’들은 돈이 든 흰 봉투들을 손가방에 가득 채운 뒤 승합차를 타고 지구당사를 떠났다. ‘작업반장’들은 살포조를 태운 뒤 달리는 차 안에서 봉투를 나눠주고 한사람씩 내려주었다. 특히 현금을 많이 뿌리는 곳은 다음 날 거리유세나 정당연설회 등이 있는 지역.

후보의 한 측근은 “현장에 나가보면 실제로 돈을 뿌렸는지 알 수 있다. 박수소리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그가 밤새 맡는 또 다른 일은 상대 후보의 돈 살포 현장을 잡는 일. 그는 “그쪽에서는 몇억원을 뿌린다. 우리가 돈 쓰는 것도 울며 겨자 먹기”라고 말했다.

상대 후보의 돈 살포 현장의 잠복조는 상대 후보의 집과 지구당사 동연락사무소, 이발소 음식점 주변에서 서성대다가 낌새만 보이면 따라 움직인다. 그는 “하나만 적발하면 막판에 기세를 올릴 수 있는 데다 상대 후보가 이기는 경우에는 보궐선거로 몰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10일 밤에는 상대 후보의 친지가 ‘안방 모임’을 갖는다는 제보가 들어와 출동했지만 허탕을 쳤다. 그는 “정보가 새는 일이 잦고 실제로 출동하면 제보자들이 겁을 먹고 휴대전화를 꺼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허탈해 했다. 그는 “이제 후보들이 할말은 다했다. 돈이 말하는 현실이 지겹다. 하지만 돈이 먹히는 지역이 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얼만데 막판에 놓쳐버린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부산〓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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